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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굴기처중(屈己處重) - 자기를 굽혀서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자기를 굽히는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되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난다.(屈己者, 能處重, 好勝者, 必遇敵)”라는 말이 있다.

 

  ‘자기를 굽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보면, 지난 10월 26일 돌아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맨 먼저 떠오른다. 평생 자신을 잘 굽힘으로써 대통령까지 지냈다.

 

  12·12사태와 광주 무력진압 등에 가담한 혐의가 있고,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군인 정권에 싫증을 느낀 국민들 앞에 또 군인 출신인 노태우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나타나니, 국민들의 저항은 극도에 달하여 마침내 6월 항쟁이 일어났다.

 

  그러자 노태우 후보는, 6·29선언이라는 대전환을 시도했다. 자기를 굽힌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고, 김대중(金大中) 씨를 사면복권하고, 대부분의 규제 조처를 철폐하는 내용이었다.

 

  뚜렷한 장점도 별 인기도 없던 그가 1987년 12월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가장 큰 원인은 김대중, 김영삼(金泳三) 등 야당 지도자의 분열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에 의해서 개정된 헌법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이므로, 군인 대통령이라고 일컫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36%의 저조한 지지율로 당선되고 보니, 힘도 없고, 국회마저 여당이 겨우 128석이라 무슨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몸을 한껏 낮추고 “보통 사람 노태우. 믿어 주세요!”라고 외쳤다.

 

  줏대 없이 끌려다니다 보니, 국민들이 아예 ‘물 태우’라고 불렀고, 본인도 “그렇게 불러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철저한 굽힘이었다. 사실 정치는 물 흘러가듯이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말에,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라고 했다. 물은 낮은 곳을 따라 제 갈 길을 잘 찾아 가장 낮은 바다로 가기 때문이다. 공적만 있는 대통령이 있을 수 없듯이, 과오만 있는 대통령도 없다. 그러나 후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공과(功過)가 달라진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말기에, 당 대표 김영삼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서 두 차례 구속됨으로써 거의 업적은 완전히 묻혔다.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갖고 간 것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업적은 적지 않다. 북방외교를 표방하여 중국, 소련, 동구권 국가 등과 외교 관계를 맺어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교역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유엔에 남북한 동시가입했다. 국민연금제도를 만들고, 의료보험을 전국민에게 확대 실시했다. 고속철도를 건설하여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게 했다. 세계 제일의 인천공항을 건설해 우리나라를 국제화했다. 분당 일산 등 서울 주변 도시를 만들어 부동산값을 안정시켰다.

 

  재판에 의해서 부과된 추징금도 다 납부하고 유언으로 자신의 과오를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세상을 떠났고, 국립묘지 안장을 사양하고, 가족 묘소를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굽혔다.

 

  노태우 대통령은 허물이 적지 않았지만, 다른 후임 대통령들이 이 정도라도 일을 하면, 그래도 괜찮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屈 : 굽힐 굴. * 己 : 몸·자기 기.

* 處 : 곳·처할, 처. * 重 : 무거울 중.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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