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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경신(謙虛敬愼) - 겸손하고 마음을 비우고 경건하고 신중하게

 

  우리나라에 많은 종가(宗家)가 있지만, 가장 전형적인 종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종가라고 다 동의할 것이다.

 

  지금의 종손 청하(靑霞) 이근필(李根必) 어른과 그 윗대 종손 동우(東愚) 이동은(李東恩) 어른을 만나보면, 두 어른 모두 겸손하고 마음을 비우고 경건하고 신중하게 처신하고, 그런 자세로 집안을 다스려나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 어른을 만나본 다른 분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도산서원 원장겸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병일(金炳日) 원장은 두 분의 그런 처신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선비문화수련원에서 연수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감동받은 연수과정이 ‘퇴계 종손과의 대화’라고 한다.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고 경건하게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에서 크게 감동을 받는다. 비록 상대가 어린아이라도 꿇어앉아서 따뜻한 말씀으로 대화를 나누고, 퇴계선생을 비롯한 조상이나 집안 자랑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러한 퇴계 종가는 영조(英祖) 때 멸문(滅門)의 화(禍)를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1728년 영조 4년에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이 영조를 몰아내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정희량은 만고충신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현손이었다. 난에 가담했다가 실패해 처형 당하고 집안에 크나큰 화를 입혔다.

 

  정희량의 형님이 일찍 죽고 연달아 조카까지 죽자, 정희량의 아버지 정중원(鄭重元)은 명당인 경북 영주의 순흥(順興)으로 이사를 했다. 정씨 집안의 아들이 총명하고 풍채가 좋다는 소문이 널리 났다. 그 때 마침 퇴계 종가에서 사위감을 구하고 있었는데, 정희량의 중매가 들어왔다. 종손이 정희량의 집에 가서 신랑감을 보니, 늠름한 대장부로 마음에 들었다. 더 자세히 보니, 거칠고 반역을 도모할 상(相)이 비쳤다.

 

  그래서 종손은, “우리 딸은 많이 모자라고 몸이 약해서 훌륭한 아드님의 배필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정희량의 부친은 몹시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퇴계 종가와 혼인을 맺는 것은 집안의 크나큰 영광이었다. 혼인을 안 했기 때문에 그 뒤 정희량이 역적으로 처형됐지만, 종가에는 아무런 화가 미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안동 일대에서 전설로 전해지고 있지만, 선생의 6대 종손 이수겸(李守謙) 공 때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 증손 이이순(李淳)이 지은 〈행략(行略)〉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자식을 위해서 혼사를 논의하는데, 도내 문벌 있는 집안에서 혼사 맺기를 원했다. 곁에서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그 집안은 과연 망했다. 사람들은 공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탄복했다.”

 

  종손의 신중한 자세가 집안을 구했다. 500년 이상 종가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겸손하고 자신을 비우고 경건하고 신중한 것이 그 비결인 듯하다.

 

*謙: 겸손할 겸. *虛: 빌 허.

*敬: 공경할 경. *愼: 삼갈 신.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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