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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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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난망(師恩難忘) - 스승의 은혜를 잊기 어렵다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 한다.

돌아가신 뒤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 할 은혜를 받은 스승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필자의 생애에 가장 큰 은덕을 내린 스승이 바로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 1917-2000)선생이다. 지난 515일이 스승의 날이라, 평소보다 더욱 연민선생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가 평생 한문학(漢文學)을 연구하여, 적지 않은 논문을 발표하고 저서를 낸 것은, 선생의 은혜가 절대적이다필자는 거의 운명이라 할 정도로 10세 때부터 한문에 취미를 붙여 미친 듯이 좋아하였다. 거저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정확하게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다.

 

  필자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사는 시골 마을이나 인근에 많은 한학자들이 있었고, 그 분들 가운데는 한문 서당을 운영하는 분도 있었고, 서당은 운영 안 해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할 만한 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어릴 때 상당히 시근방지고 별쭉을 부리는 아이라서, 시골 서당 선생들을 무시하여, 그런 서당에 아예 다니지 않았다. 어떻게 가르치는가 싶어 한번 가보긴 했는데, 진도가 너무 느린 것이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한문을 잘 해 보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혼자서 옥편(玉篇)을 외운다고 다 외우고, 국어사전을 살펴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뽑아 사전도 만들고, 한문 책도 떠듬떠듬 보긴 했지만, 한문 문리(文理)가 툭 트이지 않았다. 한문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없으니, 마음은 언제나 심히 답답하였다.

 

  이러다가 용기를 내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학계에 유명한 교수님들에게 한문 문법을 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답장이 없고, 오직 연민선생만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었다. “문법에 관한 내용을 편지로 다 답하기는 어려우니, 졸저 한문신강(漢文新講)을 사 보시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한문신강이란 책은, 한문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문 문법과 해석 방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 책으로서, 필자의 욕구에 딱 들어맞았다시골 고등학생이 일국의 대가로부터 친필 답장을 받았으니, 너무나 기쁘고 공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즉각 한문신강을 사서 여러 번 통독했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로 옳게 문장도 안 될 한문 편지를 과감하게 지어 보내어도, 꼭 답장을 했다.

 

  필자는 연민선생으로부터 학교에서 강의를 들은 것은, 단 한 시간도 없고, 주로 편지를 주고받거나, 댁으로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으로부터 받은 친필 편지와 한시가 수십 통 되는데, 앞으로 󰡔연옹수간(淵翁手簡)󰡕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낼 생각이다. 마치 퇴계(退溪) 선생의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 공이, 퇴계 선생에게서 받은 서신과 한시를 모아 편집하여 사문수간(師門手簡)으로 만든 것에 감히 견주려 하고 있다.

 

  선생은 당당하여 누구에게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다하였다. 이런 점이 선생의 최대 장점이지만, 너무 심하게 엄숙하게 하기 때문에 최대의 결점이 되기도 하였다. 누구의 잘못도 그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여 심하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발을 끊은 제자나 지인들도 적지 않다. 본래 풍모에 위엄이 가득한 데다 목소리가 10리를 갈 정도로 크고,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반드시 직설적으로 나무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리 위엄에 눌려 아예 접근을 하지 않았다.

 

  필자도 심한 꾸지람을 듣고 몇 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의 속마음은, 잘못 되지 말고 바른 길로 가라고 인도하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너무 엄하게 그 즉석에서 하시니,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미워한다고 오해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만 넘으면, 따뜻한 마음씨에 남을 배려하는 정성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거기까지 알기가 어려웠다필자가 나중에 한문학 교수가 된 뒤에도, 선생은 필자가 쓴 글이나 말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지적하고, 심하게 나무랐다.

 

  반대로 필자가 선생의 잘못이나 문제점을 지적하면 순순히 잘 받아들였다. 절대 스승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거부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생의 위세에 눌려서 그 앞에서 할 말을 못 했다. “‘다음에 해야지하고 미루면 안 된다. 일단 부지런히 글을 많이 잃고, 많이 생각하고, 글을 많이 짓고 책도 많이 내라.”고 늘 격려하셨다. 유명한 교수 가운데는 제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억눌러, 제자로 하여금 한평생 아무런 학문적 업적을 내지 못 하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필자에게 시골에 앉아서 내가 최고다.’라고 하고 있으면, 그냥 향원(鄕原)이 되고 만다. 학자들이 많은 서울로 와서 학문활동을 해라.”고 하시면서, 서울의 저명 대학에 몇 차례 교수 자리를 주선하신 적도 있었다.

 

  연민선생의 학문을 계승하여 연구하는 연민학회가 있어, 활발한 활동을 하여 한문학 한국학 계통의 대표적인 학회로 커 가고 있다. 몇몇의 진실한 제자들이 이름 내지 않고 자진해서 봉사를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원들은 대부분 연원가(淵源家)의 후손들이거나, 글을 받아간 노인분들이다. 연세대학교 제자들은 거의 없다. 교수로 30년 가까이 계셨지만, 대부분 선생의 위엄 있는 겉모습만 보고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졸업생 가운데는 선생의 후임자가 되지 못 했다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필자는 별 능력이나 업적도 없이 14년 째 연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학회의 많은 분들이 크게 도와주어 나날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연구하여 후세에 영원히 남게 하는 것이 선생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 : 감사할, . *. : 은혜, . *. : 어려울, . *. : 잊을, .]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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