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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종라백대(綜羅百代) - 주자(朱子)의 학문은 모든 시대의 것을 종합하여 망라하였다

 

  오늘날은 인쇄기술과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하여, 몇 십 년 전과 비교하면 누구나 하나의 신문사와 방송국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쇄, 복사하는 일을 자기 집에서 할 수 있고, SNS에 글을 올릴 수 있고, 방송국 프로그램에 못지않은 유튜브를 제작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작품을 전파할 수 있다. 정보 소통이 지금만큼 원활한 시대가 없었다.

  인쇄나 방송을 통해서 전파하는 내용이, 옳은 내용이면, 장려할 일이지만, 짧은 지식에 근거한 잘못 아는 것을 제작해서 올리거나, 악의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특정인을 비난하기 위해서 올린다면, 이는 국가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젊은 후세들을 오도하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9월 16일 우리나라에서 구독자수가 제일 많은 조선일보의 「박정훈칼럼」에, “주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칼럼을 게재하였다. 작자는 현직 논실실장이다.

  주자가 지금 우리나라를 죽이고 살릴 만큼 영향력이 있는 현실도 아니고, 지금 일부 좌파정치인들이 중국을 높이는 것을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고 개인의 판단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생각이고 개인의 판단이다. 박씨처럼 주자를 잘 알지 못하면서 주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문제다.

  1999년 김경일이라는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내었을 때는, 성균관, 향교 등을 비롯한 유림단체에서 성토대회를 열고,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법적 대응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질의서 반박서 등을 낸 사람이 있었다.

  청주대학교 최병철 교수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대응하는 책을 낸 적도 있었다. 유학상의 중요한 인물에 대해서 거의 같이 폄훼하는 글을 썼는데도, 지금까지 성균관, 향교 등 유림단체나 개인 등 아무도 반박하는 글을 쓴 사람이 없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교의 힘이 약해졌고,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증거이다.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이 450년 전에, “퇴계(退溪) 선생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은 많지만, 아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했다.

주자의 경우는 더 심하다. 박씨가 안다고 쓴 주자는, 실상과 완전히 다르다. 박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급하는 주자의 사람됨과 학문은, 주자의 실상과 다르다. 각종 동양철학개론 등의 책에 실린 주자에 대한 소개도 실상과 많이 다르다. 그러니 주자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주자의 학문을 주자학(朱子學)이라 하는데, 주자학을 곧 성리학(性理學)으로 알고 있는데, 성리학은 주자학의 극히 한 분야에 불과하다.

  양명학(陽明學)을 주자학과 완전히 대립개념으로 보는데, 양명학은 주자학을 약간 개선한 학문이다. 양명은 실천을 중시했는데, 주자는 실천을 중시 안 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마당에 왕양명(王陽明)이 지은 주자를 찬양하는 비석이 서 있다.

  주자는, 학자, 문학가, 사상가, 교육자, 행정가이다. 그는 단순히 공리공론만 일삼고, 형식만 추구한 학자가 아니고, 역대의 모든 학문을 종합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였다. 주자는 생애 동안 통치체재에 순응하며 기득권을 누린 보수주의자가 아니고, 개혁적인 사고를 가지고 통치체재를 비판한 실천적 학자였다.

  19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71세 때 세상을 떠날 때까지 52년 동안 관리의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관직에 있은 것은 8년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지방관이었고, 중앙조정에서 근무한 것은 42일에 불과했다.

  지방관으로 나간 것은, 백성을 구제하고, 학교를 일으켜 교육을 펼치는 등 자기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할 사창(社倉) 제도를 만들고, 토지를 정확하게 측량하여 세금과 부역을 감면해 주고, 토호들의 백성 착취를 막고, 농사기술을 개량하고, 억울한 죄수가 없도록 공정하게 재판하는 등 실학적인 능력이 아주 탁월하였다. 막연히 성리학만 주장하는 학자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지막 벼슬이 환장각(煥章閣) 대제(待制) 겸 시강(侍講)이었는데, 주로 황제에게 강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직책이었다. 황제를 바른 길로 인도하게 위해 매번 심하게 나무랐기 때문에 나중에 반대파들이 반역으로 몰아 추방하였고, 그의 학문을 위학(僞學 : 가짜 학문), 그를 위사(僞師 : 가짜 스승)로 몰아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였다. 생애 마지막 5년 정도는 아주 불우하게 지냈다.

  주자가 궁지에 몰리자, 심지어 가까운 제자들 가운데는 스승을 배반하고 공격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좋은 학문과 사상이라도 약간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자 학문의 좋은 점을 퇴계선생이 받아들여, 수준 높은 우리의 학문과 사상을 만들어 내는 데 잘 활용하였다.

  오늘날 좌파 정치인들이 중국을 좋아하는 것과 조선시대 학자들이 주자학을 공부하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청나라 학자 전조망(全祖望)은, 그의 저서 송원학안(宋元學案)에서 주자의 학문을 평가하여, “넓고 큰 데 이르렀고, 정밀하고 섬세함을 다하였고, 모든 시대의 학문을 종합적으로 총괄했다.


[致廣大,盡微,綜羅百代]”라고 극찬했다.


[*. 綜 : 모을, 종. *. 羅 : 벌릴, 라. 모을, 라. *. 百 : 일백, 백. *. 代 : 대신, 대. 시대, 대.]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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