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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문교(百世聞敎) - 백대의 먼 후세에도 가르침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주자(朱子)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간행한 것은, 1543(중종 38)년이 처음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주자의 저서 가운데서 사서집주(四書集注), 주자가례(朱子家禮), 통감강목(通鑑綱目)정도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있었고, 주자대전이나 주자의 강의록인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은 전래된 적이 없었다.

 

  조선이 건국한 이후에도 옛날 국사교과서에서 말하던 ‘국가에서 유교나 주자학을 국교(國敎)로 삼았다.’라는 기록은 없었다. 종교가 없는 시대에 국교라는 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고려 말기 이후로 불교의 폐단이 심했으므로 조선왕조 건국 이후 성균관(成均館)이나 각 고을 학교인 향교(鄕校)의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을 많이 하고 불교를 탄압하고 승려들의 행동을 제한했을 따름이었다.

 

  경서 주석 등에 주자의 학설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주자의 문집과 강의록 등을 참고할 필요가 절실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건국 80년 뒤인 1476년 정효상(鄭孝常)이 명나라에 사신 갔다가 돌아오면서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를 구입해 왔는데, 겨우 20권이었다. 전체의 10분의 1 정도 되었다.

 

  주자대전과 주자어류가 우리나라 학문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수입하여 간행해서 보급해야겠다고 생각한 분이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이었다. 마침내 기회가 와서 1518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자대전, 주자어류는 물론이고, 주자를 거론할 때 언급되는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등 주자의 저서나 주자와 관계되는 서적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왔다.

 

  국내에서 간행하여 보급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 해인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사림들이 축출되었고, 모재도 관직에서 추방되어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19년 만인 1537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다. 국가 출판국인 교서관(校書館)의 제조(提調)가 되어 주자대전의 출판에 착수하여 1543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활자로 찍어내었다.

 

  이 때 모두 20질을 찍었다고 한다. 왕실, 경연, 춘추관 등에 납품하고, 개인이 주자대전을 입수한 분은, 퇴계선생과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다. 이 분들은 교정에 공이 많았기 때문이다. 충재(冲齋) 권벌(權橃)은 중중 임금이 직접 하사하였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인종(仁宗)이 자기 스승이라 하여 한 질 하사하였다. 동시대의 대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등은 주자대전을 읽어 보았다는 기록이 없다. 충재는 다 읽어 보고 다시 교정을 봐서「주자대전고의(朱子大全考疑)」라는 글을 남겼다. 유희춘은 그 뒤 간행할 때도 계속 교정의 임무를 맡았다.

 

  퇴계선생이 1543년에 입수하여 읽기 시작했다. 유교경전에 나오는 교훈은 보편적인 말인데, 주자대전에 나오는 내용은, 병의 증세에 맞게 처방하듯 상대의 자질이나 수준에 맞게 주자가 교육하는 내용이었다.

 

  “이 좋은 책을 나 혼자 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편지 가운데서 꼭 필요한 내용을 뽑아서 줄여 만든 책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이다. 1556년에 완성이 되었으니, 13년 동안 노력하여 뽑은 것이다. 그 때부터 주자의 글을 일반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주자서절요가 주자의 많은 시문 가운데서 서신 형식의 글만 선발한 것을 아쉬워하여, 제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은 1557년에 주자의 시문 전반에 걸쳐서 선발한 주자문록(朱子文錄)을 편찬하였다. 이는 벌써 퇴계를 만나기 전의 일이니, 두 분의 의기가 일찍부터 통했던 것 같다.

 

  제자 죽유(竹牖) 오운(吳澐) 역시 주자서절요가 서신뿐인 것을 아쉬워하여, 1611년에 자신의 열람의 편의를 위하여 주자의 시문을 선발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책을 편찬하였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제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도 주자의 시문을 선발하여 주문작해(朱文酌海)라는 책을 편찬하여 주자의 글을 널리 읽도록 했다. 주자의 시문을 널리 읽으려는 노력은 퇴계학파의 전통이 되었다.

 

  꼭 스승의 면전에 나가야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 몇 백 년, 공간적으로 몇 만 리를 떨어져 있다 해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직접 가르침을 듣는 것처럼 배울 수 있다.

 

  퇴계선생은 주자서절요 서문에서, “비록 수천 년 뒤 먼 후대라 할지라도 진실로 가르침을 들은 사람은, 귀를 당겨 얼굴을 마주해서 가르침을 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雖百世之遠, 苟得聞敎者, 無異於提耳而面命也.]”라고 했다.

 

[*. 百 : 일백, 백. *. 世 : 세상, 세. 30년, 세. *. 聞 : 들을, 문. *. 敎 : 가르칠, 교.]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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