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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추로지향(鄒魯之鄕) - 맹자와 공자의 나라처럼 유학의 기풍이 있는 고을

 

  도산서원(陶山書院)을 방문할 경우, 주차장에서 서원 쪽으로 100여 미터쯤 가다 보면, 오른 쪽 강가 언덕 위에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공자(孔子)의 77대 종손 공덕성(孔德成) 선생이 1980년 12월 8일에 도산서원 원장에 추대되어 행공(行公)하러 왔을 때 쓴 글씨이다.

 

  그 왼쪽에 한문 문장이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데, 그 뜻은 “경신년 12월 8일 삼가 도산서원에 나아가 퇴계 선생 신위에 참배하고 전교당(典敎堂)에 올라가 퇴계선생께서 남기신 서원 원규(院規)를 읽고 흠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했다. 이에 돌에 새겨 기록한다. 곡부(曲阜) 공덕성.”이다. 뒷면에는 그 뒤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의 번역문이 친필로 새겨져 있다.

 

  추로지향이란 꼭 유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학문이나 문화가 번창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영남(嶺南) 지방을 칭찬하는 말이었는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맨 먼저 썼다. 그러다가 여러 고을에서도 썼는데, 영주(榮州) 함창(咸昌) 등도 일찍부터 일컬었다.

 

  예안(禮安) 안동(安東) 지역은 대학자 퇴계선생(退溪先生)을 배출한 지역이고, 수많은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들이 학문을 이어간 곳이니 추로지향이라고 일컫는 데 있어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더구나 도산서원 등이 2019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그 학문이나 유풍이 남아 있음이 국제적으로 공인이 되었다.

 

  추(鄒)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던 나라 이름인데, 지금은 추성시(鄒城市)가 되어 있고, 노(魯)는 산동성에 있던 나라 이름이다. 노나라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면서 정승인 주공(周公)이 봉함을 받은 나라이다. 주공은 주나라 문물제도의 기틀을 만든 인물로, 유교의 예악제도가 대부분 주공에 의해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유교문화가 노나라에서 더욱 융성했던 것이다.

 

  그 뒤 공자와 맹자가 나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유학의 기풍(氣風)이 짙었고, 두 나라가 망한 뒤에도 이 지역에는 유학적 기풍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추로(鄒魯)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추로라는 말이 맨 먼저 등장하는 고전은 〈장자(莊子)〉 ‘천하편(天下篇)’이다. “추나라 노나라 이 두 나라 지역의 지식인들이 유교경전에 밝았다.”라고 했다. 공자 맹자에 의해서 제창된 학문적 분위기로 학자가 많이 나오고, 그 학자들이 지은 전적(典籍)이 많이 남아 있어, 자연히 다른 지역에 비해서 학문이나 문화가 앞서 나갔던 것이다.

 

  그 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추나라와 노나라는 주공(周公)의 유풍이 있어, 풍속이 유학을 좋아하고 예의가 갖추어져 있다.”라고 했다. “자식에게 상자 가득히 황금을 남겨 주는 것은 경서(經書)를 남겨 줌만 못하다.[遺子黃金滿, 不如一經]” 라는 속담도 이 지역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추로지풍(鄒魯之風), 추로지사(鄒魯之士) 등의 말은 있어도, 추로지향이라는 말은 안 쓰인다. 간혹 노추(魯鄒)로 적기도 한다.

 

* 鄒 : 나라 이름 추. * 魯 : 나라 이름 로. * 之 : 갈 지. …의 지. * 鄕 : 고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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