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한학연구원장
종정우서(鍾精于書) - 책에다 정을 쏟는다
큰 학자가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책을 구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께서 큰 학자가 되는 데는 선생의 외할머니 남씨(南氏) 부인의 결심이 컸다.
남씨는, 선생의 부친 이식(李埴)의 초취(初娶) 장모(丈母)인데, 그 부군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집에 책이 아주 많았는데, 아들 가운데 공부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이 되자, “내가 들으니 ‘책이란 것은 선비한테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군.”라고 말하고는, 그 많은 책을 사위인 공부를 좋아하는 퇴계선생의 부친에게 모두 다 주었다. 이런 연고로 퇴계선생은 어릴 때부터 책 많은 집안에서 자라 큰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는 책에는 애정이 몇 배로 더 가는 법이다.
보잘것없는 필자도 학문하는 대열의 끝에 끼어 있지만, 다행히 책을 얻는 데 도움을 준 분이 많았다. 우리 형님 내외는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책 산다고 말하면, 다시 물어보지도 않고 다 사 주었다. 진주(晋州) 출신의 사업가 강영(姜瀅) 회장은 필자가 북경(北京)에 머무를 때, 중국에 오면 꼭 나를 만나, 책 사보라고 적지 않은 돈을 번번이 주고 갔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니까, 중국 갔다가 필자에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서 책을 사 오는 분도 있다. 그 외 여형제, 친척, 친구, 제자 가운데도 책을 사 주는 사람이 있다.
근세에 중국 최대 최고의 학자인 전종서(錢鍾書 : 1910-1988) 선생이 있었다. 동서고금의 인류의 모든 문화는 그의 연구의 대상이었다. 폭넓은 세계관과 강렬한 탐구심으로 중국 학문의 방법을 다시 설정한 분이다. 문학, 사학, 철학의 구분은 그에게는 애초에 없었다.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의 같은 전씨(錢氏) 가문 출신인 북경대학(北京大學) 교수를 지낸 전목(錢穆)이 "국사통론(國史通論)"을 지어 그 서문을 전종서의 부친인 청화대학(淸華大學) 교수(敎授) 전기박(錢基博)에게 요청해 왔다. 아들이 워낙 책을 많이 보고 글을 좀 짓기에, 아버지가 아들 전종서에게 한번 지어 보라고 시켰다. 그 때 전종서는 16세였는데, “우리 아버지가 이제서야 나를 알아보는구나!”하고 심력(心力)을 다 기울여 지었다. 아버지가 보고는 단 한 글자도 고칠 곳을 발견하지 못 하고, 그대로 전목에게 보냈고, 전목은 그대로 실어 출판했다. 전목은 세상 떠날 때까지 그 글의 진짜 작자가 전종서인 줄 몰랐다.
중국 역사상 영어를 가장 잘 한다고 한다. 영어뿐만 아니라, 라틴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등에도 능할 뿐만 아니라, 고전을 줄줄 외운다. 1979년 개혁개방 이후 미국 하바드대학 등에 가서 강연할 때, 라틴어 고전 등 서양 고전을 즉석에서 바로 인용하니, 미국 대학 교수들이 경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 하며, “미국 어느 대학에 재직하십니까?”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1949년 이후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영어사전의 단어 해설이 잘못되었다고 전종서가 다 고쳤는데, 다시 간행할 때 영국 전문학자들이 심사하면서 전종서의 의견을 다 수긍하여 반영하였다. "모택동선집(毛澤東選集)"을 영역할 때 책임자도 그였다.
자신의 주체없이 학교에 의존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자기 뜻을 세워 열심히 공부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그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전화는 아예 안 받는다. 주변 사람들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화교(華僑) 출신의 영국 작가 한소음(韓素音)이 전종서를 만나러 특별히 북경에 왔다. 그러나 전종서는 “계란만 잘 먹으면 됐지, 계란 낳은 늙은 닭은 보아 무엇 하겠소?”하고는 사절했다. 자기의 생각은 자기 책에 다 있으니, 책만 보면 다 된다는 뜻이었다. 전종서의 딸 전원(錢瑗)이 북경사범대학 외국어과 교수로 있었다. 필자가 1994년 북경사범대학에 머무를 때 마침 필자와 가까운 교수가 그녀와 친하다기에 한번 만나 볼까 추진해 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 학자 가운데 김언종(金彦鍾) 교수는 만날 기회를 얻었으나, 다음에 하다가 놓치고 말았다. 한국 삼련서점(三聯書店) 대표를 지낸 김명호(金明壕) 교수는 여러 번 그의 집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전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저서를 주로 출판하던 홍콩 삼련서점에서 기념으로 최호화판 5백부 한정판으로 "전종서전집"을 다시 간행했다. 중국 대륙에 4년제 대학만 해도 1500군데니, 달라는 곳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 책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김교수는 한 질 얻었다.
지난 6월 김교수를 근 40년 만에 다시 만나 이야기하면서, 전선생에 대해서 좀 아는 체를 했더니, 김교수는, 즉석에서 “전종서전집"을 소장할 만한 분은 바로 허교수님입니다.”라고 했다. “기념으로 받은 책이니, 원 주인이 갖고 계셔야지요!”라고 몇 번 강하게 사양했지만, 지난 7월 2일 칠십대 노인이 30킬로 가까운 책을 지고, 서재로 찾아왔다. “책은 그 책을 읽을 만한 분이 갖고 계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흔쾌히 필자에게 기증하였다. 정말 나의 서재를 빛나게 할 보물이 생겼다.
단지 친필로 「서김교수소증전종서전집후(書金敎授所贈錢鍾書全集後)」라는 발문(跋文) 한 편으로 보답을 할 뿐이었다.
[*. 鍾 : 쇠북, 종. 모을, 종. *. 情 : 뜻, 정. *.于 : 어조사, 우우. …에, 우. *. 書 : 글, 서. 책,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