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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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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한학연구원장

 

전기수유(奠基垂裕) - 터를 잡아 많은 것을 남겨주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한문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한문 공부하면 굶어 죽는다.”고 말렸다. 그래도 혼자서 이 좋은 학문을 사람들이 왜 안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이 방면의 전문가가 되어 보겠다.”고 일찍 결심하였다. 1970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무나 한문 공부가 하고 싶어 어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과감하게 휴학하였다. 한문 도사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시골로 들어가 한문 공부에 전념하였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한 결과, 웬만한 한문 책은 혼자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가야겠다고 1년 뒤 다시 복학하였다.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국사 시간에 이름만 들었던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부록으로 실린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란 역법(曆法)에 관한 책을 빌려 살펴보았다. 이순지(李純之), 김담(金淡)이 저술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자랑스러운 수준을 보여주는 과학고전이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도 보아도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아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 때 느낀 절망감은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한문을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실력이 정말 형편이 없구나!”, “한문 공부를 옳게 하려면, 만물박사가 되어야 하겠네. 칠정산내외편을 알려면, 한문은 물론이지만, 천문학 수학 물리학 등등을 다 알아야 하겠구나. 이거 앞 길이 막막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스로 위안을 하였다. “이 한문으로 된 칠정산내외편을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한문을 잘 하는 사람은 천문학 수학이 안 되어 모를 것이고, 천문학자라 해도 한문을 잘 하는 사람이 있기 어려울 것이니, 어느 누구도 번역을 못 하겠지?”등등.

 

세종대왕 때까지 세계에서 자체적으로 역법(曆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아랍과 우리 조선 세 나라뿐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천문학 수학 등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속했다. 세종대왕 때 저술된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은 세계 과학사에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문으로 되어 있고 한문에 능한 천문학자가 없으니, 누가 해석하겠는가? 근대에 와서 그 맥이 끊기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77년 대학 도서관에 가서 보니, 세종실록 번역본이 꽂혀 있었다. 관심이 있던 칠정산내외편도 이미 번역되어 있는지 얼른 확인해 보니, 번역되어 있었다. 누가 번역했는지 찾아보니, 유경로(兪景老), 현정준(玄正晙), 이은성(李殷晟) 등이었다. 한문학자는 천문학이나 수학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 번역할 수 없을 것이고, 천문학자는 한문이 안 되어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번역이 되겠나 했는데, 번역이 되어 있었다. 이 세 번역자는 어떤 분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번역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 궁금증을 40년 동안 갖고 있었다. “이 세 분 과학자들이 어떻게 한문을 해석해 냈지? 한문학자들과 합동으로 번역했나?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하여 한문학자들에게 따로 한문을 배웠나?” 등등 혼자서 이리저리 상상을 했다. 그 때는 인터넷 검색 등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 분들이 대학교수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구하면 얻는다.[求則得之]”라는 맹자(孟子)의 말처럼 드디어 궁금증이 풀어졌다. 지난 7월말 도산서원(陶山書院) 선비문화수련원 유서영(兪瑞暎) 지도위원이 손수 편집한 책을 한 권 보내왔는데, 정화만필(丁龢漫筆)이었다. 필자가 40여 년 동안 알고자 했던 바로 그 선장(先丈) 소남(召南) 유경로(兪景老 : 1917-1997) 교수의 유고집이었다. 책을 읽어 보고서 그 동안의 궁금증이 대부분 풀렸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문학자이지만, 그의 학문하는 자세나 정신은 선비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한국기초과학연구원에서 선정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초과학자 5인에 추대되어 있다. 1955년 서울대학교에서 천문학 강의를 처음으로 시작한 이래로, 1958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1년부터 4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대학에 유학하여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배워왔다. 1959년 서울대에 지학과(地學科)를 창설하고, 국립천문대 설치에 주역을 담당하였다. 천문학회, 한국과학사학회를 창설하여 회장을 지내며 기초를 닦았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우주항공청을 개설하여 우주항공시대를 여는 데 가장 먼저 큰 기초를 닦아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유교수의 가장 큰 업적은 칠정산내외편의 번역이다. 번역을 주관하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처음에 국내에서 번역해 낼 학자가 없을 것으로 간주하여,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에 의뢰할 생각을 했다. 학문적 주체성을 생각할 때 세종대왕이 편찬한 자랑스러운 과학고전의 번역을 일본학자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유교수의 주도하에 그 후배들이 맡아 번역을 이루어 내었다. 이 일은 단순히 한 종류의 과학고전을 번역해 낸 것이 아니고, 끊어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맥을 이어준 것이었다. 과학사를 전공하던 전상운(全相運) 교수는 칠정산내외편의 번역은 우리나라 과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유교수는 그 이후에도 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상위고(象緯考),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서운관지(書雲觀志) 등 우리나라의 과학고전을 여러 종 번역해 내어 끊어질 뻔 했던, 우리나라 과학의 전통을 후세에서 계승할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 관직 수가 약 1500개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는 단연 대제학(大提學)이다. 최고 관직인 영의정(領議政)10명 배출한 집안보다 대제학 한 명 배출한 집안을 더 낫게 친다. 경연(經筵) 강의의 최고 책임자, 나라에서 지어내는 시문의 최종 점검자, 과거시험의 출제, 채점 위원장을 맡고,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물러나지 않아도 되고, 물러날 때는 자기의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다. 누가 대제학에 되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문풍(文風)에 영향을 미칠 정도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에게 대제학 자리가 두 번 주어졌다. 임금을 비롯하여 주변의 동료 후배 제자들이 취임하라고 간절하게 권했지만, 퇴계선생은 두 번 다 사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은 일생 동안 못 다한 공부를 하여 저술을 하고, 제자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임무가 더 컸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학자나 교수들이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지위가 학술원(學術院) 회원이다. 학문으로서 그 방면의 최고로 인정받는 의미가 있다. 실력이 인정되어 추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그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런데 후배 학자나 제자들이 학술원 회원으로 추대하여 본인이 승낙만 하면 되는데도, 끝까지 사양한 학자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문학자 유경로 교수였다. 아마 지금까지 유일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직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학자가 돈과 명예를 쫒으면 공부가 안 된다.”라고 늘 자신을 경계하고 제자들에게도 이야기하였다.

 

그가 미국에서 4년 동안 유학하고 돌아왔을 때, 가족들 선물 하나 안 사왔다. 그 부인이 참다 못 하여 애들 연필이라도 한 자루 사오시지.”라고 말하자, “내가 미국에 연구하러 갔지, 선물 사러 갔소?”할 정도였다. 마지막에는 병상에서 제자들의 논문 지도를 할 정도였다. 돌아가기 직전까지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모두가 자기 학문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때문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천문학, 한국과학사, 과학교육, 과학고전 번역을 위해 많은 기초를 닦아 후학들에게 풍부한 유산을 물려주었다.

 

선비정신은 꼭 유학자 한문학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 종사하던 다 통하는 것이다. 유교수님은 천문학자이지만, 그의 학문적 태도는 바로 퇴계선생 등 우리 선현들의 선비정신이 현대에 다시 발현된 것이었다.

 

[*. : 드릴, . 정할, . *. : , . *. : 드리울, . *. : 넉넉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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