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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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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한학연구원장

 

덕곡문회(德谷文會) - 덕곡서원의 글하는 모임

 

  서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201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도산서원(陶山書院) 등 한국의 서원 9개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가장 큰 지정 이유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였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근 500년 동안 백성들을 교화(敎化)시켜 나갔던 점이다. 선비들은 공부하고 실천하여 자신을 수양한 뒤, 주변 사람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을 교화시켜 나갔다. 물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착하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비들이 이런 학문적 활동을 하려면, 서원을 관리하고 뒷바라지하고 심부름하는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는 잘 알려지지 않고 기록에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선비들은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행사를 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서부경남 지역에서는 이런 행사를 ‘복달음’이라고 불렀다. 한여름 삼복(三伏) 더위 때가 되면 농촌에서는 그래도 조금 수월하다. 이런 때 음식을 장만하여 서원에 일보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모임을 한다. 그러면서 먼저 인근의 유림, 선현의 종손 등을 초대하니, 자연히 상당한 규모의 잔치가 된다. 음식으로는 옛날에는 개고기를 많이 썼다.

 

  선비들이 모이면 경서(經書)를 토론하고, 새로 지은 시나 문장을 발표하니, 단순히 음식을 먹기 위한 모임이 아니었다. 필자가 어릴 때 인근 선비들로부터 문회(文會)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문회라는 말은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유협(劉)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중국에서 당(唐)나라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고려(高麗) 때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많이 쓰여 왔다.

 

  퇴계선생(退溪先生)을 향사(享祀)하는 의령(宜寧)의 덕곡서원(德谷書院)에서 지난 8월 2일, 지금까지 있어 온 복달음의 전통을 계승 확대하여 문회를 열었다. 영남퇴계학연구원 원장인 영남대학교 최재목(崔在穆) 교수를 초빙하여 ‘퇴계선생의 경(敬)’에 대한 강연을 열었다. 뒤이어 유진희(柳辰熙) 박사의 퇴계시 강독, 주창돈(朱昌燉) 사문의 경재잠(敬齋箴), 권갑현(權甲鉉) 교수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송독(誦讀)이 있었다.

 

  원근의 유림 50여 명이 참여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도 김병일(金炳日) 원장의 뜻을 받들어 여러 유사들이 참석해 주었다.

 

  지금 대부분의 서원에서는 매년 한두 차례 선현에 대한 향사(享祀)만 올리고 문을 닫아두고 있다. 앞으로 서원을 좀 더 활성화하여 지역사회를 교화하고 나아가 나라 전체에까지 확장되어, 우리나라의 전통 학문을 계승하고 윤리 도덕을 살리는 데 앞장서야 하겠다.

 

* 德 : 큰 덕. * 谷 : 골짜기 곡. * 文 : 글월 문. * 會 : 모을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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