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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유학자, 조식/허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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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 뒷산에 자리 잡은 남명 조식의 묘소. 뜻있는도서출판 제공

 

〈조선의 유학자, 조식〉은 남명 조식(1501~1572)의 생애와 학문을 밝힌 전기다. 허권수 경상대 명예교수가 썼다.

남명을 표현하는 한 마디는 ‘실천하라’이다. 실천궁행하는 정신과 기백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선조가 경연을 하면서 남명의 제자 김우옹에게 “조식의 학문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김우옹은 “실천궁행하는 공부가 매우 독실하고 그 정신과 기백이 사람을 감동시켜 깨우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고 했다. 그 실천궁행의 발단으로서 남명은 모든 공부의 처음을 쇄소응대(灑掃應對)라고 했다. 물 뿌리고 비질하며 윗사람의 부름에 응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남명은 “쇄소응대의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이야기한다”고 일침했다. 쇄소응대는 소학(小學)의 첫 가르침인데 그것도 못하면서 대학(大學) 운운하지 말라는 거다.

 

남명 선생의 생애와 학문, 기백과 정신

맑은 정신 유지 위해 쇠방울 차고 다녀

중종·명종 등 벼슬 내려도 입조 안 해

“만고의 역사 바위 삼아 이름 새겨라”

 

캡처2.PNG

 

실천궁행의 근본이 경(敬)이다. 그 한 예가 남명이 10대 후반부터 옷 띠에 성성자(惺惺子) 쇠방울을 차고 다니며 움직일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맑게 유지한 거다. 선조가 김우옹에게 다시 물었다. “조식이 너에게 가르친 바가 무엇이냐?” 김우옹은 “흐트러진 마음을 잡고 경(敬)을 주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경과 하나가 되는 것이 의(義)다.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이고, 밖으로 결단하는 것이 의라고 했다. 그러나 경과 의가 다를 리가 없는 것이다.

 

15세기 조선은 태종에서 세종에 이르는 ‘때 이른 절정의 시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6세기, 즉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대에 이르는 시기는 달랐다. 사화의 피비린내가 16세기 전반 내내를 적셨다. 그 세기 말에 임진왜란이 터졌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그 피비린내 속에서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봉우리가 솟았다. 그 쌍봉이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이다. 퇴계가 사변적이었다면 남명은 실천적이었다. 경북의 퇴계가 그랬다면, 경남의 남명이 또 그러하였다.

 

남명의 그러함이 경상우도 사상의 정점이다. 남명은 경상우도의 산천이 품은 기질을 사상화했다. 경상우도를 요즘 식으로 말하면 부울경쯤 될 거다. 합천 삼가 외가에서 태어난 남명은 김해 탄동에서 18년, 다시 삼가 토동에서 13년, 그리고 지리산 덕산동에서 11년 바다와 하늘, 지리산을 품었다. 김해 산해정(山海亭), 합천 삼가 토동의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사(雷龍舍), 덕산동의 산천재(山天齋)는 경상우도 산천의 웅비와 기상을 품은, 남명이 부여한 이름들이다.

 

그 정신과 기백의 표현이 1555년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 이른바 단성소다. 명종을 ‘고아’, 문정왕후를 ‘과부’라 칭하며 “신은 지금 전하가 따르고자 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했다. 선조에게도 죽음을 무릅쓰고 두 차례 비답의 상소를 올렸다. 한 번은 ‘구급(救急)’, 또 한 번은 ‘군의(君義)’였다. 관리들의 농간에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실정을 거론하며 ‘급한 일을 구제해야 한다’ ‘임금이 옳아야 한다’고 임금을 일깨우며 피를 토했다.

 

남명은 말년 10년을 지리산 자락에서 지냈다. 자리를 잡기 위해 11번 지리산을 찾았던 터였다. 지리산행에서 한유한 정여창 조지서, 올곧게 살았던 세 군자의 숨결을 느꼈다. 산에 가면 바위에 이름을 많이 새겨놓았다. 남명은 말한다. “세 군자의 이름은 결코 바위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 차라리 만고의 역사를 바위 삼아 이름을 새겨라.”

 

남명은 중종, 명종과 선조가 벼슬을 내렸으나 한사코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세 임금이 벼슬을 내린 것이 9차례였다. 1566년 명종을 1번 숙배했다. 남명은 “백성들이 유랑을 떠나 마을이 텅텅 비었다”며 “임금의 학문이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근원이다. 학문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임종하기 전 몸져누운 남명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돌아가신다면 무슨 칭호를 써야 하겠습니까?” “나를 처사(處士)라고 일컫는 것이 옳다.” 그뿐이었다. 남명은 제자들에게 창문을 열라고 했다. “하늘의 해가 저렇게도 청명하구나.” 남명은 벽의 두 글자, 경과 의를 가리켰다. “배우는 사람들이 힘써 여기에 공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은 평범한 이치이니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1572년이었다.

 

지리산 자락에 덕산서원(덕천서원), 합천에 회산서원, 김해에 신산서원이 섰다. 모두 산(山) 자가 들어가는 이름들이다. 남명은 거대한 산(山)이었다. 책의 편집에는 경남 창원에 소재한 뜻있는도서출판의 이상영 편집장이 1년여 수고했다고 한다. 허권수 지음/뜻있는도서출판/464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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