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천서원은 1461년(세종 7년)에 사액돼 서원을 짓고, 1787년(정조 11년)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이곳에서 삼우당 선생의 향사를 지내왔으나 대원군 때 서원이 훼철됨에 따라 사림이 향교에다 흥학당(興學堂)을 세워 선생의 향례를 매년 거행하다가 1891년(고종 28년) 정사 건립을 사림이 발의하고 본손이 협조해 노산정사가 건립됐다. 그 후 실화로 소실돼 1953년 노산정사를 재건하고, 1978년 정사 뒤에 신실을 모시고 도천서원이 복실돼 경남유형문화재 237호 도천서원 신안사재로 지정됐다가 201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도천서원에 배향된 충선공(忠宣公)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선생은 1331년(고려 충혜왕 원년)에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휘는 익점(益漸), 초휘는 익첨(益瞻)이고 호는 삼우당(三憂堂)이다. 그 의미는 항상 나라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성리학이 보급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자신의 도가 부족함을 걱정한다는 것으로 선생이 직접 지은 호(號)이다. 특히 33세에 좌정언(左正言)이 되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면 종자를 가져와 문물혁신과 국가 경제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사후 조선조 태종 때 갈충보국 계운순성 좌익택중광리 정량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시호를 충선(忠宣)이라 했다. 그리고 충선공 삼우당 선생은 이곳 도천서원뿐 아니라 전남 나주의 장연서원, 전남 장흥의 강성서원, 전남 담양의 운산서원, 여주의 매산서원에도 배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