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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조혼 풍습의 관례도 있었다. 장손인 구인회는 14살 때 결혼을 하였다. 신부는 이웃 허씨 집안 딸로, 일찍부터 서로가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전통적인 양반마을의 관례대로 양가 어른들이 미리 정한 혼인이었다. 구인회는 신부보다 나이도 두 살 아래라 늘 말도 조심하였고 부인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장가를 가면 가마도 타고 처가 가는 장엄한 행차도 하는데, 담장 너머 신부집이라 구인회에게는 이러한 추억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아쉬울 법도 하다.

 

1921년 5월 9일 개교 당시의 지수공립보통학교 전경./지수면지/
1921년 5월 9일 개교 당시의 지수공립보통학교 전경./지수면지/

 

# 지수공립보통학교 입학

새신랑 구인회가 15살이 되던 1921년, 지수공립보통학교가 4년제(1925년부터 6년제)로 개교하였다. 신식교육과정에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고려하여 1학년은 80명, 2학년은 구인회를 포함 56명으로 출발하였다. 개교 당시 3~4학년 과정의 학생은 없었다. 15세는 요즘 중학교 2학년의 나이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조홍제도 17살에 서울에서 지금의 초등학교 1, 2, 3학년 과정을 공부하였다.

1921년 개교한 지수공립보통학교 당시의 학생부 관련 자료는 6·25전쟁 때 전부 분실되었다. 그 후 기록한 것으로 ‘지수공립보통학교 수업증서수여대장’이 보존되어 있다.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졸업생 명단으로 추측된다.

 

이름과 생년월일, 집 주소 등 아주 간단하게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이병철과 조홍제의 이름은 없고 구인회만 기록되어 있다. 수여대장의 기록을 한글로 옮기면 “具仁會(구인회), 明治(명치) 40年 7月 19日, 智水面勝內里(지수면승내리)”이다.

1921년은 일제 강점기이다. 생년월일의 명치 표현은 일본 천황 연호이다. 구인회가 태어난 1907년은 명치 40년이다. 7월 19일은 구인회의 음력 생일이다. 1895년 3차 갑오개혁 때 ‘양력’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일제강점기 때도 양력 사용을 강요하였지만 서민들의 오랜 관습으로 양력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음력’ 날짜 기록을 많이 사용하였다.

 

신식학교는 서당에 다니다가 입학한 10대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한글을 배우고, 숫자의 덧셈과 뺄셈, 나누기와 곱하기는 물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렀다. 체육시간에는 테니스와 축구 등의 운동도 가르쳤다.

1921년 4년제 지수공립보통학교 개교
한학 공부한 학습 고려해 2학년으로 출발
3학년 때 입학한 이병철과 함께 공부했지만
6개월 후 이병철이 서울로 전학가면서
1924년 1회 졸업생은 창업주 중 구인회뿐

 

지수공립보통학교 수업증서 수여대장. /지수초등학교/
지수공립보통학교 수업증서 수여대장. /지수초등학교/

 

지수공립보통학교 수업증서 수여대장. 구인회 이름이 적혀 있다./지수초등학교/
지수공립보통학교 수업증서 수여대장. 구인회 이름이 적혀 있다./지수초등학교/

 

# 구인회·이병철·조홍제와 지수초등학교

해가 바뀌어 1922년 구인회가 3학년으로 진급하였다. 의령군 정곡면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이병철도 지수에 학교가 생기자 이곳 지수면으로 시집을 간 누나집에 생활하면서 지수공립보통학교(현 지수초등학교) 3학년 과정에 입학하였다. 이병철은 6개월간, 즉 3학년 1학기만 지수공립보통학교에 다니고 2학기 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구인회와 이병철이 함께 다닌 지수공립보통학교의 추억은 이 시기의 6개월 뿐이다. 1924년 3월 20일, 입학시 56명이었지만 구인회를 비롯 모두 52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구인회, 이병철, 조홍제 세 사람의 지수초등학교 1회 졸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수초등학교 기록물인 ‘수업증서수여대장’에는 구인회 이름은 있지만 이병철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다.

 

조홍제의 경우 1983년 1월 20일 본인이 공식으로 공개한 개인 연보 자료에도 지수초등학교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 오래전 중앙일간지 특별 취재팀이 ‘수십년만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LG, 삼성, 효성 창업주 세 사람이 1회 졸업생으로 배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진주 지수초등학교 취재를 하였다. 그 결과 조홍제는 지수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효성그룹 관계자도 언제부터인가 신문기사에 효성 창업주가 LG, 삼성 창업주와 지수초등학교 1회 동기동창으로 소개되자 신문사에 기사 수정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잘못 쓴 기사를 후배기자가 복사와 인용한 내용이 많아 지금은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 기업가정신 교육센터 구 지수초등학교

구 지수초등학교 본관과 강당은 리모델링 되어 3월 말 기업가정신 교육센터로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를 계기로 기업가정신 수도를 선포한 진주시가 중심이 되어 조홍제, 이병철의 지수초등학교 재학, 졸업관계를 명확히 밝혀 유명 경제인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아울러 진주와 대한민국의 경제문화유산으로 가치 있는 구인회의 진주 포목점터와 상봉동 자택 위치 검증도 정리하여야 할 과제이다.

1924년 3월, 지수보통학교를 졸업한 구인회는 더 큰 세상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손이자 결혼을 한 후라 가정을 책임져야 할 무거운 짐도 동시에 지고 있었다.

# 호(號) 작명에 관한 이야기

연암(蓮庵), 호암(湖巖), 만우(晩愚)는 구인회, 이병철, 조홍제의 호(號)이다.

연암 구인회와 호암 이병철의 호에는 한글 발음 ‘암’ 자가 있어 의령 정암(솥바위)과 연관 지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한자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연암 구인회의 한자어 표기는 蓮庵으로 연꽃과 암자의 뜻이다. 호암 이병철은 湖巖으로 호수와 바위의 뜻이다. 만우 조홍제는 晩遇로 늦고 어리석다 뜻이다.

 

구인회는 지인들이 구인회하고 실명을 부르거나 구회장, 구사장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편하지 않아 스스로 호를 작명하였다. 호 작명 시기는 플라스틱 공장 확장으로 부산 연지동에 이사 간 1954년 전후이다. 연지동 락희화학공업사 플라스틱공장이 한창 성장해 나가는 시기였다. 구인회의 주택도 연지동이고 집 뒤에 작은 암자와 연못이 있었다. 연지동의 연 글자와 연못 뒤 작은 암자를 인용하여 ‘연암 - 蓮庵’으로 작명하였다.

삼성 이병철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한 후 한국 경제계의 주목을 받을때였다. 1955년 11월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전용순 회두(모임의 대표)가 이병철을 보고 이회장, 이병철 회장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하니 호를 하나 가지도록 권유하였다. 전용순 회두가 호수 마냥 맑은 물을 잔잔하게 가득 채우고 큰 바위 마냥 흔들리지 않는 준엄함의 뜻을 함축하여 ‘호암(湖巖)’이라 작명하였다.

조홍제는 ‘늦되고 어리석다’ 뜻의 ‘만우(晩遇)’를 스스로 작명을 했다.

 

구인회는 15세, 이병철은 13세에 신식학교에 다녔는데 조홍제는 가장 늦은 17세에 중동학교 초등과에 입학하였다. 일본 유학을 간 후 30살의 늦은 나이에 대학 졸업을 하였다. 독자 사업도 당시 나이로 아주 늦은 56세에 시작했다.

 

<구인회의 한마디> 효심은 그릇 안의 물보다 연약하지만 돈보다 더 강하다.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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