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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진주에서 장사를 한 지 6년이 지났다. 구인회는 공장이나 도매상에서 포목을 구입한 후 손님에게 파는 소매 영업에서 벗어나 직접 포목을 가공하여 판매도 하였다. 광목에 무늬를 넣거나 문양을 개발하여 주문 생산 판매도 하였다. 그 결과 구인회 포목점에는 다양하고 예쁜 포목이 많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포목 사업의 번창으로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구인회의 두 번째 장사의 인연은 무역업이었다.

 

구인회 상점이 있었던 1930년대 진주 최대의 번화가인 종로거리 ①좌측에 1906년에 개점한 三中井(미나카이 백화점) 간판이 보인다 ②문선당은 허순구가 설립한 진주 최초의 백화상점이고, 그 옆이 ③천종환상점, 맞은편이 ④구인회 상점으로 추측된다. 사진 속 위치에 관한 설명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매형 허순구 가족이 유년시절 기억을 정리한 것으로, 문서나 사진을 통한 사실 관계의 보완이 필요하다./수원광교박물관/
구인회 상점이 있었던 1930년대 진주 최대의 번화가인 종로거리 ①좌측에 1906년에 개점한 三中井(미나카이 백화점) 간판이 보인다 ②문선당은 허순구가 설립한 진주 최초의 백화상점이고, 그 옆이 ③천종환상점, 맞은편이 ④구인회 상점으로 추측된다. 사진 속 위치에 관한 설명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매형 허순구 가족이 유년시절 기억을 정리한 것으로, 문서나 사진을 통한 사실 관계의 보완이 필요하다./수원광교박물관/

 

# 두 번째 선택 무역업

처남 허윤구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만물산’이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늘이나 명태 등을 수출하고 콩을 수입하는 무역업이 주 사업이었다.

 

구인회는 처남 회사에 투자한 후 수출입 업무 관계로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다. 1934년 부산에서 서울, 평양, 신의주, 중국 장춘 간 철도 노선이 개설되어 만주 일대를 견학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중국 현지 시장을 보고, 중국 상인을 만나 보니 그들의 규모나 거래 단위가 엄청난 것을 알고 구인회는 충격을 받았다. 귀국길에 ‘진주시장이 너무 좁다’, ‘진주에서 하는 포목점 운영 외 더 넓은 곳으로 가서 더 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마산에서 정미소와 자동차 운수업, 토지를 정리한 이병철도 새로운 사업을 찾아 중국 심천, 장춘 등을 다니면서 중국 상업 규모를 보고 무역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졌다. 그리고 대구에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가 1937년 말~1938년 초이다. 구인회의 중국견학과 비슷한 시기이다.

 

진주 대표 포목점 구인회상점과 천종환상점 홍보물.
진주 대표 포목점 구인회상점과 천종환상점 홍보물.

 

# 세상은 넓고 크다

만주 지역 등 큰 시장을 보고 온 구인회는 우수한 견직물이 있는 일본의 원단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기 위해 곧바로 일본으로 가서 견직물 시장과 전국 유통망을 가진 상점들을 찾아다녔다. 마침 원하는 제품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몇 천원 정도 물건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하였더니 “그 정도 금액으로는 여기서 거래를 하지 못합니다”하고 일본 상인은 대응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 중국 시장에서 본 대륙의 시장 규모에 이어 일본 상업계의 규모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무역을 통한 구인회의 사업 계획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또다시 포목상회의 통상적인 가게 일만 하면서 세월은 흘러갔다.

 

진주 포목점 운영 6년째 소매영업 벗어나
직접 가공·판매로 자금 여유 생기자
무역업하는 처남 허윤구 회사에 투자
中·日시장 돌며 ‘더 큰일 해야겠다’ 생각

1939년 2차대전 이후 위기 맞은 포목점
청과물·생선 사업 동업으로 규모 키워
1940년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사장 취임
진주 상공업계서도 유력인사로 인정받아

 

# 포목점 위기, 생선 사업에 도전하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중국과 전쟁을 벌인 일본은 물자 총동원, 물자통제령, 생활용품 통제령까지 공포하였다.

구인회 상점에도 영향을 주었다. 명주, 비단은 없어지고 인조 섬유제품만 판매해야 하는, 더 이상 포목점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처하자 구인회는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찾아다녔다.

 

어느 날, 진주 중앙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김필수’사장을 만나 생선시장의 현황을 알게 되었다. 생선은 생필품으로 물자통제령 물품에 포함되지 않았다. 구인회는 김필수와 삼천포에서 ‘하신상업주식회사’를 운영하던 외사촌 하길상과 함께 생선 사업 동업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주 취급 품목은 청과물과 어물이었다. 연안해역에 나가 어선으로부터 신선한 생선을 싣고 올 배도 한 척 구입하였다. 소금과 식량, 술, 담배, 기름 등 생활필수품을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가 어부에게 주고, 어부는 잡은 생선으로 지불하는 물물교환 거래 방식이었다. 어부들 역시 필요 물품을 생선으로 대체하니 이득이 있어 거래는 잘 되었다.

구인회 역시 중간 유통 없이 생선을 공급받아 진주에서 판매하니 싱싱함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일본인이 세우고 경영한 미나카이 포목점(백화점) 진주지점 홍보물.
일본인이 세우고 경영한 미나카이 포목점(백화점) 진주지점 홍보물.

 

# 주식회사 구인상회 법인 설립

1940년, 포목점만 전문으로 하던 구인회 포목상점이 과일, 생선 등 품목이 늘어나자 규모를 키워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상호를 바꾸고 사장으로 취임을 하였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다고 할 때 “십년은 장사를 해보아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이 기억났다. 25살 때인 1931년에 포목상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40년에 주식회사로 사업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으니 아버지 뵐 면목도 갖춘 것이다.

 

주식회사의 사장이 된 구인회는 진주 청과류조합 책임자로 선출되는 등 이에 걸맞게 진주 상공업계에서도 재력과 위치를 인정받는 유력인사이자 영향력 있는 상공인이 되었다.

 

# 화물자동차 운수업 도전과 실패

1944년 7월, 구인회는 경상남도 도청에서 중고 목탄 화물자동차를 매각한다는 공고문을 보았다. 해안이나 어촌에서 생선을 사서 내륙도시로 빠르게 운송하면 더 신선하게 공급할 수 있고, 운송사업으로도 이윤이 많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구인회는 화물차 30대를 불하받아 운송사업을 하였지만 중고 화물자동차가 계속 말썽을 피워 많은 손해를 보았다. 생선을 싣고 가다가 고장이 나 생선이 썩게 되어 운송업자가 변상을 해주어야 했다. 썩지 않는 물건도 운송 중 고장이 나면 다른 차를 빌려 운송을 해주어야 하니 이중 삼중으로 비용이 지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구인회 사장은 ‘운송사업은 내가 할 사업이 아니다’고 판단하였다. 화물자동차에 미련을 두지 않고 운전기사들에게 모두 주어 버리고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였다.

 

구인회에게 자본금을 지원한 원준옥사장의 원창약방 전경. 아들 원종록(대원한약방) 이어 손자 원호영(현재 원한의원 운영)까지 3대째 한방 역사를 가진 명문가이다./원한의원/
구인회에게 자본금을 지원한 원준옥사장의 원창약방 전경. 아들 원종록(대원한약방) 이어 손자 원호영(현재 원한의원 운영)까지 3대째 한방 역사를 가진 명문가이다./원한의원/

 

# 구인회의 다양한 사업이야기

1935년 10월 5일 ‘마루니 진주화주운송주식회사’가 진주읍 대정정 208번지에 설립되었다. 부산항과 사천 선진항에 입하되는 화물의 진주방면 중심 해륙 운송 취급 및 해륙물 위탁판매, 창고업, 화재보험 대리업을 주요 영업으로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 등기이사에 ‘구인회’와 ‘원준옥’의 이름이 있다. 원준옥 사장은 구인회가 물난리 이후 포목점을 다시 재기할 때 구인회의 됨됨이를 보고 별다른 조건 없이 거액을 빌려준 진주 거상이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원준옥은 ‘원창약방’외 진주 거부답게 몇 곳의 기업을 경영하였다. 1931년 9월 1일 세워진 진주양조합자회사, 1935년 7월 13일 설립된 진주어채(魚菜)주식회사, 1935년 10월 5일 설립된 마루니 진주화주운송회사이다. 한국의 약령시 역사, 진주 경제사, 기업사 연구에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구인회의 한마디> 물건이 잘 팔린다고 중도에 가격을 올리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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