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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희화학에서 생산되는 크림은 자체 연구를 통해서 새롭고 다양한 제품을 계속 생산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한국 투명 크림의 대표적 제품으로 자리 잡고, ‘크림은 럭키, 럭키는 크림’으로 인식되었다. 호사다마랄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 깨어지는 크림통

해방 전후, 당시 국내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도로였다. 특히 농촌지역은 유달리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이 많았다. 물건을 차에 싣고 내릴 때 일일이 사람이 운반하기에 부주의하거나 박스를 던지는 경우 크림통끼리 부딪혀 뚜껑이 깨어지는 제품도 많았다. 이로 인해 크림이 반품되는 등 매출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락희크림의 명성과 이미지에도 좋지 않았다. 깨지지 않는 크림통 개발이 절실하였다.

 

요즘이야 플라스틱에 관해 풍부한 지식과 정보가 있지만 1950년대 전후 한국 경제력으로 볼 때 플라스틱제품 생산은 매우 힘든 기술이었다. 아니 플라스틱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시기였다.

 

미국에서 수입한 사출성형기. 오리엔탈 상표로 빗과 비눗갑을 생산하였다./LG역사관/
미국에서 수입한 사출성형기. 오리엔탈 상표로 빗과 비눗갑을 생산하였다./LG역사관/

 

# 플라스틱 크림통을 개발하다

구인회는 연구개발을 담당하던 구태회 전무에게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제품 크림통 개발을 연구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구태회는 부산 시내 모든 서점을 다니며 플라스틱 제품 정보를 찾았지만 전쟁 와중에 쉽게 구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병철과 함께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여 회사를 경영하던 조홍제 부사장을 만났다.

마침 조홍제 부사장이 일본에 출장 간다는 것을 알고 플라스틱 관련 책을 요청하였고, 조홍제는 일본에서 합성수지 제조 총서 6권을 구해서 구태회 전무에게 건네주었다.

 

구태회는 일본어 서적을 탐독하여 플라스틱의 실체를 파헤쳤다. 얼마 후 모든 분석을 끝낸 구태회가 간단하고 명확하게 연구보고서를 만들어 구인회에게 설명하였다.

“형님,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은 폴리스틱이라는 ‘원료’, 그리고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사출성형기’, 그리고 만들고자 하는 ‘금형’, 이 3가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크림 뚜껑은 물론 플라스틱 빗, 비눗갑, 칫솔 등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용품도 제작이 가능합니다.” 이날 구태회의 보고는 락희화학이 화장품 제조 회사에서 플라스틱 사업으로 확장하는 연구 보고와 다름이 없었다.

 

한국 투명크림 대표 제품된 ‘럭키 크림’
운반 도중 뚜껑 깨지는 경우 많아 피해 커
구인회 지시로 구태회 연구보고서 만들자
1951년 새로운 플라스틱 사업 진출 밝혀

1952년 부산 범일동에 플라스틱 공장 준공
그해 ‘오리엔탈’ 상표 빗·비눗갑 첫 생산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서울지사 개설
수출입 위해 ‘락희산업주식회사’로 신설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생산한 금형과 사출성형 제품들.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생산한 금형과 사출성형 제품들.

 

#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다

1951년 봄, 구인회는 플라스틱 사업을 결심하였다. 구인회가 새 사업에 대한 구상을 밝히자 직원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 화장품이 잘 팔리고 하니 여기에 집중하자며 반대하였다. 구인회는 “사업은 남이 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이 끝나면 생활용품을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국민들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것도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이 플라스틱 사업을 할 것이다. 남이 안하는 것을 해라. 뒤따라 가지 말고 앞서 가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라.” 구인회의 결심은 강하였다.

 

1951년 10월, 부산시 범일동 884번지에 새 공장터를 준비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때 또 한 사람의 허씨 집안 사람이 락희화학 경영에 참여한다. 허준구 상무의 형님이자 허만정의 차남인 허학구다.

 

1952년 4월, 마침내 범일동 락희화학 플라스틱 공장이 준공되었다. 1947년 부산에 와서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전쟁의 풍란을 겪은 후 5년 만에 제법 규모가 있는 플라스틱 사업을 시작하였다. 럭키크림에 이어 두 번째 생활용품의 생산이기도 하다.

 

# 밀수품으로 오해받은 비눗갑

1952년 11월 처음으로 생산한 빗과 비눗갑에 찍힌 상표는 영어로 오리엔탈(ORIENTAL)이었다. ‘동양’이라는 의미이다.

아직 생산된 제품이 시중에 많이 공급되지 않은 시기였다. 어느 날 경찰이 오리엔탈 비눗갑을 들고 가던 시민을 붙잡아 외국 밀수품이라며 압수를 하거나 밀수꾼으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하였다. 한국에서 자주 보지 못한 것이었고, 영어상표가 있으니 외국제품이라 오해할 만도 하였다.

 

1953년, 휴전협정이 발효되었다. 각종 정부기관이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가자 공장 운영 등 인·허가를 서울로 가서 받아야만 하였다. 업무상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구태회 전무가 서울에 지사 사무실을 개설하였다. 그 후 자리가 잡혀가자 부족한 일손을 메울 직원이 필요하였다. 구인회는 허만정의 넷째 아들인 허신구를 추천하였다. 당시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통운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서울 사무실을 운영하던 구인회는 원자재 수출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서울 사무실을 무역업 전문으로 하는 ‘락희산업주식회사’로 신설 전환하였다(반도상사, LG상사로 사명 바뀜).

 

이 시기 구인회의 둘째 아들 구자승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여 경리담당 업무를 보았다. 구자승은 60년대 효자 수출품의 하나였던 가발제조업에 관심을 가지고 반도상사가 가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1968년 부산 연지동에 가발공장을 신축토록 한 장본인이다.

 

이한구 교수의 ‘한국재벌 형성사’에 따르면 1955년 자본금 기준으로 락희화학공업사는 삼양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산업은행에 이어 4번째 큰 기업이었다.

 

1952년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생산한 빗.
1952년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생산한 빗.

 

# 진주 출신의 6선 국회의원 구태회

깨지지 않는 크림통 개발은 구태회 작품이다. 훗날 구인회 6형제 중 유일하게 정치권에 진출하여 국회부의장과 무임소장관을 지냈다. 일본 유학시절인 1944년, 1월 20일 일본은 특례법을 제정하여 구태회처럼 능력 있는 조선유학생을 강제 동원하여 학병입영을 시켰다.

 

구태회 외 당시 강제 징집된 유명 인사로 김수환 추기경, 평양에 배치된 후 단체로 탈영을 시도하다 실패로 고초를 겪은 조영식 경희대학교 총장, 포항제철 회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박태준, 그리고 ‘관부연락선’과 ‘지리산’을 쓴 작가 이병주도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에 동원되어 중국 소주까지 갔다가 귀국하였다.

 

# 플라스틱으로 만든 훌라후프의 인기

1950년대 초 오스트레일리아에는 훌라후프라는 둥근 테를 만들어 허리에 걸고 돌리는 놀이가 유행하였다.

훌라후프는 플라스틱 튜브로 만든 것인데, 이 제품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진 놀이형 운동기구가 되었다.

1957년 말,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훌라후프를 가지고 운동하거나 놀이를 즐기는 것을 우연히 본 구평회가 몇 개 구입하여 귀국하였다.

 

락희화학에서 이것을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도시, 농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국 곳곳이 훌라후프 열기였다.

훌라후프는 허리에 두르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돌린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에는 보기가 조금 민망하다 하여 문교부장관이 훌라후프를 돌리는 행위는 장기가 꼬이는 등 건강에 해롭다고 사용에 제동을 걸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 당시 인기를 어떻게 표현할까?

 

<구인회의 한마디> 남이 하지 않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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