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메뉴 건너뛰기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조회 수 27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동방한학연구원장

 

수제자론(首弟子論)- 수제자에 대해서 논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집인 신라(新羅) 최치원(崔致遠)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서부터 조선말기 학자들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다 살펴봐도 ‘수제자(首弟子)’라는 단어는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수제자라는 말은 옛날에 아예 쓰인 적이 없는 말이다. 중국에서도 쓰인 적이 없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쓴 ‘퇴계선생사전(退溪先生史傳)’에 “선생은 끝내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으셨다.[不以師道自處.]”라고 했다. 선조(宣祖) 임금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에 대해서 물었을 때,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옹) 선생은 “조식은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도 제자 송규렴(宋奎濂)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는다네”라고 했다.

 

  옛날의 큰 선생들은 모두가 스스로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같이 공부하는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스승 된 사람이 자기에게 배우는 사람보고 제자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더구나 어떤 제자를 두고 ‘수제자’라고 일컫거나 지정한 적은 아예 없었다. 제자 가운데서도 설령 누가 좀 뛰어나고 오래 배웠다 할지라도 스스로 수제자라고 생각하거나 일컬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남명선생의 수제자’, ‘퇴계선생의 수제자’는 애초에 존재하지를 않았다. 후세에 와서 그 후손들끼리 수제자 다툼을 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는데, 우스운 일이다.

 

  유가(儒家)의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선조가 어느 선생의 수제자인데…”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이는 그 후손의 생각이지, 그분의 선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선조의 스승도 그렇게 인정해 준 적이 없었다.

 

  필자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덕천서원(德川書院)의 일을 9년 동안 맡아보다가 금년 봄에 그만두었다. 어떤 사람이 “덕천서원에 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을 배향(配享)하지 않느냐?”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왔다. “정인홍은 남명선생의 수제자이고, 더구나 벼슬이 정1품 영의정(領議政)에까지 이르렀는데, 안 모신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배향해야 될 이유를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몇 가지를 크게 잘못 알고 있다. 남명 선생의 수제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명 선생이 “아무개가 내 수제자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또 서원에 향사되거나 배향되는 인물은 학덕(學德)으로 정하는 것이지, 벼슬로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선생(大先生)을 모신 서원의 위패(位牌)에는 벼슬을 쓰지 않는다. 벼슬 가지고서 그 인물의 학덕을 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서원에 어떤 인물을 배향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일 맡은 몇 사람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림의 공론(公論)이 있어야 가능하다.

 

* 首 : 머리 수. * 弟 : 아우 제.

* 子 : 아들 자. * 論 : 논할 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6 (861) 기력여우(氣力如牛) - 기운과 힘이 소와 같다 아우라 2021.02.02 282
155 (1009) 출륜준재(出倫俊才) -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주 있는 사람 file 아우라 2023.12.26 281
154 (995) 견리사의(見利思義) -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file 아우라 2023.09.12 281
153 (896) 안로회소(安老懷少) - 나이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어린이를 품어준다. file 아우라 2021.09.07 281
152 (879) 무재무덕(無才無德) - 재주도 없고 덕도 없다 아우라 2021.05.11 281
151 (1026) 예현호사(禮賢好士) - 어진 사람에게 예의를 표하고 선비를 좋아한다 아우라 2024.04.23 280
150 (976) 진석음식(珍惜飮食) - 음식을 보배처럼 여겨 아낀다 아우라 2023.04.18 280
149 (969) 짐본포의(朕本布衣) - 황제인 나도 본래 베옷 입은 평민이었다 file 아우라 2023.02.28 280
148 (937) 식비수과(飾非遂過) - 옳지 못한 일을 꾸며 변명하고 잘못한 것을 밀고 끝까지 한다 file 아우라 2022.07.12 279
147 (1022) 전형중임(銓衡重任) - 저울에 달듯이 사람을 골라 쓰는 중요한 임무 아우라 2024.03.26 278
146 (1021) 생소기중(生消其中) - 그 가운데서 생산되어 그 가운데서 사라진다 file 아우라 2024.03.19 278
145 (1017) 용유구자(龍有九子) - 용에게는 아홉 명의 아들이 있다 아우라 2024.02.20 278
» (1004) 수제자론(首弟子論) - 수제자에 대해서 논한다 아우라 2023.11.21 278
143 (935) 원장망권(院長望圈) - 서원 원장에 추대하는 문서 file 아우라 2022.06.28 278
142 (975) 유지경성(有志竟成) -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 file 아우라 2023.04.11 277
141 (886) 오월배망(五月倍忙) - 음력 5월 달은 두 배로 바쁘다 2 file 아우라 2021.06.29 277
140 (882) 석과불식(碩果不食) - 큰 과일은 먹지 않는다 file 아우라 2021.06.01 277
139 (881) 병심여상(秉心如常) - 마음가짐을 정상적인 것 같이 한다 file 아우라 2021.05.25 277
138 (933) 여민동락(與民同樂) -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다 file 아우라 2022.06.14 276
137 (925) 신청기상(神淸氣爽) - 정신이 맑고 기분이 시원하다. file 아우라 2022.04.19 27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11 Next
/ 11
후원참여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후원참여
연학
후원회
자원봉사참여
회원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