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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해외지기(海外知己) - 외국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을 ‘지기(知己)’라 한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므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을 훨씬 잘 살아갈 수 있고, 뜻한 일을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다. 마음을 알아주는 이런 친구가 우리나라 안에도 있겠지만 외국인 가운데서도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중국의 학계에 자주 참여하고 중국에서 꼭 필요한 서적을 쉽게 고를 수 있는 데는, 필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중국인 지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북경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 교수 주서평(朱瑞平) 박사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31일 같은 대학의 유명한 서예가 진영룡(秦永龍)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주교수가 19일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필자는 중국에 가면 주교수를 만나서 중국의 학계소식이나 새로운 서적의 간행 소식을 들어 왔다. 지난 2018년 7월 이후 전화를 해도 계속 받지 않았다. 그 뒤 진교수에게 전화했더니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 뒤 코로나로 중국에 갈 수가 없어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궁금하던 차 지난해 추석 밤에 주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의외로 반갑게 받았다. “다 나아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다음에 북경 오시면 꼭 연락주십시오” 등등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백혈병이 갑자기 재발해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필자는 1994년 2월 43세의 나이로 북경에 갔다. 따로 북경사범대학 교수를 집으로 초빙해서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다. 일상생활은 겨우 하겠는데, 강의 등에 들어가 보면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전문가 교수에게 물어보니, 학술서적을 열독(閱讀) 안 해서 그런 것이라며, 중국어회화 아무리 배워도 안 되니, 한문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따라 학술서적을 읽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한문실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소개받은 사람이 주교수다.

 

  같이 ‘중국사찬요(中國史纂要)’를 소리 내어 다 따라 읽고, 의문 나는 곳은 질문하며 서로 토론했다. 그 책을 끝내고 중국사회과학원에서 편찬한 ‘중국문학사’ 4책을 읽다가 돌아올 기한이 돼 50여개의 테이프 녹음을 다해서 가져와 들었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니까 한가하던 중국 교수들의 생활에 크게 변화가 왔다. 최근 5년 동안에 주교수가 연구 책임자가 돼 국가 연구비를 15억원 정도 수령했다고 했다. 딸이 호주로 유학가자 부인도 따라가서 거기에 취직을 하니기러기아빠 신세가 됐다.

 

  게다가 그 지도교수가 국가의 언어문자를 총괄하는 일을 맡자, 주교수에게 너무나 많은 일을 맡겼다. 미국 등 외국 출장도 매년 10번이 넘었다. 그러니 몸이 견디지 못 한 것 같다. 나이도 필자보다 10년 적어, 이 장수의 시대에 60세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해 유달리 가까운 지인들이 세상을 많이 떠났는데, 주교수의 작고는, 중국 학계나 교육계는 물론이지만, 정말 필자에게도 큰 손실이다.

 

*海: 바다 해. *外: 바깥 외.

*知: 알 지. *己: 몸 기, 자기 기.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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