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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궐의신언(闕疑愼言) -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그 나머지만 신중하게 말하다

 

  흔히 우리가 정확한 지식으로 알고서 인용하는 것 가운데 알고 보면 사실 아닌 것이 의외로 많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하거나, 신문 잡지 등에 글을 쓰면 금방 퍼져 많은 사람들이 인용한다. 더구나 오늘날은 SNS, 유튜브 등에 한 번 올라오면 순식간에 펴져 확실한 사실처럼 돼 버린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몇 차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아역사공정(東北亞歷史工程)이 있은 이래로 우리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이야기했다”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신 선생이 쓴 어떤 글에도 이 말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월남의 국가주석을 지낸 호지명(胡志明)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좋아해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어 책이 너덜너덜해졌다”라는 이야기가 널리 전파됐다. 다산 연구가 박석무(朴錫武) 이사장이 자기의 저서에 이 말을 인용했다. 그 뒤 누가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어떤 신문의 기사를 보고 인용했다고 밝혔다. 최근 월남 호지명 기념관 등에 문의해 보니 그런 증거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고 한다.

 

  “중화민국 장개석(蔣介石) 총통이 우리나라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을 존경해 그의 문집 ‘화담집(花潭集)’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화담집’의 내용은 아주 단조로워 그 가운데 장개석을 매혹시킬 만한 내용도 있을 것 같지 않다.

 

  1904년 노일전쟁(露日戰爭) 때 아프리카를 돌아 동해로 향하던 무적의 러시아 발틱함대를 거제도 앞바다에서 침몰시켜 결정적 전공을 세운 일본 해군 대장 도고(東鄕)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에 견주어 칭찬하자 “나를 영국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순신 장군에게 비교하는 것은 감히 받아들일 수 없소”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을 숭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모 출판사에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서 가시가 돋아난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말입니다”라고 선전하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 아니고 ‘추구(抽句)’라는 아동용 한문책에 나오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는 글씨를 썼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모든 책에 안 의사의 말로 돼 있다.

 

  엉터리가 계속 널리 퍼져서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점점 구분해낼 길이 없어진다. 글을 쓰거나 대중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사실관계를 따져 신중하게 글을 쓰거나 강의해야 하겠다. 2500년 전 공자(孔子)께서도 지식인들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 경고를 내렸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빼어놓고, 의심스럽지 않은 그 나머지만 이야기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多聞, 闕疑,愼言其餘, 則寡尤.]”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들을 때 자신이 의심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전하려고 하는 이상한 심리가 있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 闕 : 대궐 궐, 빠뜨릴 궐.

* 疑 : 의심스러울 의.

* 愼 : 삼갈 신. * 言 : 말씀 언.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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