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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암장지하(巖牆之下) - 무너지려는 높은 담장 아래, 곧 위험이 닥칠 곳

 

  10월 30일 아침 일어나 보니, 밤새 대형 참사(慘事)가 발생해 있었다. 이태원 좁은 거리 10만 명 인파 속에 깔려 젊은이 154명이 숨지고, 132명이 부상을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인생의 꽃을 한번 피워보지도 못 하고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운명은 정말 슬프고 안타깝다.

 

  놀러 나간 자녀들이, 잠시 뒤 저 세상으로 갔다는 비보를 접한 그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을 당하는 것을 참척(慘慼)이라고 하는데, 그 슬픔은 두고두고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이라 한다. 애도를 표하고 명복(冥福)을 빈다.

 

  필자도 1999년 9월 북경(北京) 공항에서 압사사고로 완전히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 압사사고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을 해 봐서 잘 안다. 은사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 1917-2000) 선생을 모시고, 북경대학에 가서 선생의 저서 ‘조선문학사(朝鮮文學史)’를 번역하는 교수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귀국하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했다기보다는 필자가 사고를 냈다.

 

  연민선생은 보행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바퀴가 부러져 철사로 묶어 고쳤다. 그런데 북경공항 평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려 하니, 철사가 걸려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휠체어가 뒤집어지더니, 연민선생과 필자가 휭 날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다음 순간 뒤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착착 던져져 위로 포개졌다. 순식간에 맨 밑에 깔려 숨도 못 쉬겠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아! 사람이 이런 식으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에스컬레이터를 아는 어떤 사람이 뚜껑을 열고 버튼을 누르자, 에스컬레이터가 정지되었다. 5중, 6중 깔린 사람들이 일어났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정말 천행이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어떻게 막느냐? 조금 더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날 필자가 처음에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고 옆으로 몇 미터 밀고 가다가, 좀 수월하게 가자는 생각에 돌아서 에스컬레이터를 탔기 때문에 그 선택을 두고 후회가 절실하였다.

 

  맹자(孟子)께서, “천명을 아는 사람은 무너지려는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知命者, 不立乎巖牆之下.]”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사고를 막는 방법은? 일단 조짐이나 분위기를 보고 미리 피하는 것이고,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장마철에 냇가에서 야영 안 하는 것’ 등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갈수록 기본이 안 지켜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만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들으려고 하지 않고‘꼰데’로 몰아붙인다. 기본적인 도리를 다 하면 거의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사고를 당하고서 수습만 할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 巖 : 바위, 암. 높고 위험할, 암. *. 牆(=墻) : 담장, 장. *. 之 : 갈, 지. …의, 지. *. 下 : 아래, 하.]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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