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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강학불권(講學不倦) - 학문을 강론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1993225일 취임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여러 방면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부조리한 제도를 개혁하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취임한 지 오래지 않아 여러 분야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의견을 듣고 정치에 반영하려고 했다. 한번은 학계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의견을 들을 계획을 하고, 담당비서가 학계의 여러 원로들에게 전화를 하여 초청할 일정을 잡고 있었다.

 

  그 때 한문학계(漢文學界)의 원로인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을 초청하기 위해 비서가 전화를 했다. 현실정치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벽사는 가겠습니다.”라고 응낙을 했다. 잠깐 있다가 날짜가 언제지요?”라고 벽사가 물었다. 비서가 “5월 첫째 수요일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럼 안 되겠습니다. 중요한 일이 미리 잡혀 있어서 참석할 수 없군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들은 조교가 “5월 첫째 수요일은 선생님께서 무슨 중요한 일이 잡혀 있다 하셨으니, 강독수업 안 하시겠구나.”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첫째 수요일이 다 되어갔다. 조교는, “선생께서 곧 ‘5월 첫째 수요일에 중요한 일이 잡혀 있어, 그 주에는 강독 못 한다.’라고 말씀하시겠지.”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벽사는 끝내 말이 없었다.

 

  5월 첫째 수요일이 되자, 벽사는 어디 가시지 않고, 강독수업을 그대로 했다. 벽사가 청와대에 전달한 미리 잡혀 있는 중요한 일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학생들과 강독하는 일이었다.

 

  이 때 벽사는,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 국문학과에서 정년퇴직 하고, 서울 강남(江南)에 실시학사(實是學舍)라는 개인 연구소를 열어, 경학반(經學班)과 문학반(文學班) 두 모임을 만들어 매주 두 번씩 강독을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간행해 내고 있었다. 물론 강의료는 받지 않았다.

 

  무슨 대학의 정규적인 강의도 아니고, 자기 개인 연구실에서 하는 강의를 대통령과의 약속도 취소하면서 지켜나갔다.

 

  경북대학교(慶北大學校) 영어영문학과에 김성혁(金成赫) 교수가 있었다. 그는 학교 강의는 달력에 정식 공휴일로 정해진 날이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강의를 했다. 대학에서 흔히 축제, 체육대회, 추석 전후 등등해서 의례적으로 대부분 교수들이 강의를 안 하는데, 이분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학생이 한 명도 안 와도 진도를 나갔다. 다음 시간에 학생이 와서 교수님 진도 거기까지 안 나갔습니다.”라고 하면, “지난 주에 다 했어.”라고 대답했다.

 

  자기 집에서도 거의 무료로 일요일만 빼고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씩 돌아가실 때까지 영어 강의를 했다. 학비로는 학원의 5분의 1은 받았는데, 이 것도 개인적으로는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고아 돕기 등 자선사업에 썼다.

 

  관청에서 표창하려고 조사하러 오거나, 방송국 신문사 등에서 취재하러 오면, “나는 상 받거나, 이름 내려고 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절대 응하지 않았다.

 

  최신 유행어 등 모르는 곳이 나오면,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는, 미국문화원, 대사관, 심지어 미국 본토 대학의 교수 등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해서 알아내어 반드시 알려주었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조순(趙淳) 박사는 부총리, 서울시장 등등을 지냈으니, 강의를 많이 빠지겠지라고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강의를 단 한 시간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강의를 최우선으로 했지만, 워낙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분이라, 정해진 시간에 강의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반드시 보강을 했다.

 

  자신이 하는 강의를 강의하는 자신이 이렇게 중시해야 학생들도 그 강의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교수 자신이 걸핏하면, 강의를 빼 먹으면, 듣는 사람들이 그 강의를 소중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 : 익힐, . *. : 배울, . *. : 아니, (). *. : 게으를 권.]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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