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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교토삼굴(狡免三窟) - 약삭빠른 토끼가 파 놓은 세 개의 굴, 영리한 사람이 회피해나갈 여러 가지 계략

 

  더불어민주당 신년하례회에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이재명 대표에게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는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제2, 제3의 플랜을 짜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 말은 상대방을 약삭 빠른 토끼에 비유하는 말이기 때문에 상대를 좀 낮추어 볼 때 하는 말로서, 축하의 인사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말의 근원은 이러하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정승 맹상군(孟嘗君)은 인재를 좋아해 그의 집에 학자, 문인, 협객(俠客), 건달 등등이 모여들었는데, 3천 명에 이르렀다. 맹상군은 이들과 이야기하여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 가운데 풍훤(馮諼)이란 사람이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은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얼마 뒤 맹상군이 자기 식읍지(食邑地)인 설(薛)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올 사람을 모집하였는데, 풍훤이 자원하였다. 현지에 가서 백성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은 하지 않고, 빚 문서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리고 빚을 탕감해 주었다. 백성들은 맹상군이 그렇게 시킨 줄 알고, 그 은덕에 매우 감사하였다.

 

  빈 손으로 돌아온 풍훤을 보자 맹상군의 낮 빛이 어그러졌다. 풍훤은 “돈 대신 은의(恩義)를 사왔습니다”고 했다. 얼마 뒤 제나라 왕은 맹상군을 정승에서 파면해 버렸다. 맹상군은 하는 수 없이 설 땅으로 가서 살아야 했다. 그 때 설 땅의 백성들은 열렬하게 환영했다.

 

  그제서야 맹상군은 풍훤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다. 풍훤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약삭빠른 토끼는 세 개 정도의 굴을 파 놓아야 사냥군이나 다른 짐승의 추격을 피하여 죽음을 할 수 있습니다. 정승께는 굴이 하나 밖에 없으니, 아직도 걱정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두 개를 더 만들어 드리지요”

 

  풍훤은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찾아가, “우리 맹상군이 아주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시지요. 등용하신다면, 양나라를 금방 부강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했다. 혜왕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즉각 맹상군을 정승으로 삼으려고 했다. 사자를 세 번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풍훤이 바로 응하지 말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그 소문이 퍼지자, 다급해진 사람은 제나라 왕이었다. 양나라가 강성해지면, 큰일 나기 때문이었다. 얼른 사람을 보내, 정승으로 복귀하라고 재촉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조건을 제시하여 이행되면 취임하라고 했다. 제나라 임금 조상들의 사당을 설 땅에 세우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정승 자리에 오래 있었는데, 모두 풍훤 덕분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일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미리미리 앞을 내다보는 대비책을 세워두면, 곤란을 피할 수 있다.

 

*. 狡 : 교활할, 교. *. 免 토끼, 토. *. 三 : 석, 삼. *. 窟 : 굴,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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