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메뉴 건너뛰기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불여불제(不如不祭) -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만 못 하다

 

  필자가 한문학(漢文學)을 전공하다 보니, 사람들이 옛날 예법(禮法)에 대해서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 해 늘 부족함을 느껴, 언젠가 예법에 통달하게 예서를 다 읽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20년 전쯤 예법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예기(禮記)’와 그 주석을 5년,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주석을 2년에 걸쳐서 강독을 다 마쳤다. 예법에 달통하게 되었을까? 아니다. 첫째는 강독 한 번 한다고 내용을 다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오늘날의 생활방식이, 옛날 예법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면 어떻습니까?”, “부모 제사 합쳐서 한 번만 지내면, 어떻습니까?” 등등의 질문인데, 옛날에 예서에 나오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심한 질문은 “제사 꼭 지내야 합니까?”, “명절 차례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없다던데요?” 등등이다.

 

  제사의 근본은, ‘보답’이고 ‘감사’다.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감사하는 제사를 올렸다. 자신을 존재하게 해 주고, 먹고 살게 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한 최소의 보답이고 감사였다. 그래서 하늘에, 신에게,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싫어하고 귀찮은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면, 보답하고 감사한다는 제사의 근본을 망각한 것이 된다.

 

  차례(茶禮)는, 주자가례는 물론이고, 예기, 의례(儀禮), 주례(周禮) 등 중국의 어떤 예서(禮書)에도 안 나온다. 차례(茶禮)는 우리나라 순전히 문화다. 본래 설 추석만 아니고, 1년에 여러 번 올렸다.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해서 매달 초하루마다 조상 사당에 올리는 집안도 있고, 매 계절 두 번째 달에 올리는 집안도 있고, 3월 3일, 유두절(流頭節), 중양절(重陽節), 동지 등 올리는 집안도 있었다.

 

  제수도 집안 따라 다양했다. 중요한 것은 제사 지내는 사람의 정성이다. 투덜거리면서 억지로 지내면, 조상이 받겠는가? 그런 제사는 안 지내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주자가례에서 주자가, “제사의 예법은, ‘정성과 경건[誠敬]함’ 이외에는 따로 힘쓸 것이 없다”고 말씀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법, 예법 하고 말하나, 예법 행할 때 쓰이는 옥이나 폐백을 두고 말한 것이겠는가?”라고 하셨다. 제사 때 형식이나, 제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제사를 받는 조상은 염두에도 없고, 편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영합해서 유림의 대표기관이라는 데서, “차례상 간단하게 차리시오”라고 나서고, 제례 전문가라는 학자가, “차례(茶禮)는 ‘주자가례’에도 없는 것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떠들 필요가 있을까? 영합하고 싶으면 차라리 “제사 안 지내도 전혀 범법행위가 아니니, 지내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제사 지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것인데.

 

*不 : 아니 불. *如 : 같을 여.

*祭 : 제사 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9 (880)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1 file 아우라 2021.05.18 281
168 (878) 조선산학(朝鮮算學) - 조선의 산학, 우리나라의 수학 file 아우라 2021.05.04 140
167 (934) 제심협력(齊心協力) - 마음을 하나로 하여 힘을 합친다 file 아우라 2022.06.21 123
166 (928) 성문과정(聲聞過情) - 명성이 실제보다 더 지나치다 file 아우라 2022.05.10 120
165 (944) 은악양선(隱惡揚善) - 남의 나쁜 점은 덮어주고, 남의 좋은 점은 널리 알리자 file 아우라 2022.08.30 116
164 (929) 사은난망(師恩難忘) - 스승의 은혜를 잊기 어렵다 file 아우라 2022.05.17 113
163 (947) 종라백대(綜羅百代) - 주자(朱子)의 학문은 모든 시대의 것을 종합하여 망라하였다 file 아우라 2022.09.20 103
162 (930) 화목상처(和睦相處) - 화목하게 서로 어울려 지낸다 file 아우라 2022.05.24 93
161 (946) 상재지향(桑梓之鄕) - 뽕나무와 가래나무가 심어져 있는 고향 file 아우라 2022.09.13 88
160 (949) 덕고훼래(德高毁來) - 덕이 높으면 헐뜯는 일이 따라온다 file 아우라 2022.10.04 84
159 (945) 불식지무(不識之無) - 쉬운 ‘지(之)’자나 ‘무(無)’자도 알지 못 한다 file 아우라 2022.09.06 83
158 (950) 정제의관(整齊衣冠) - 옷과 갓을 정돈하여 가지런히 한다 file 아우라 2022.10.11 80
157 (948) 백세문교(百世聞敎) - 백대의 먼 후세에도 가르침을 듣는다 file 아우라 2022.09.27 79
156 (952) 절롱위권(竊弄威權) - 위세와 권력을 훔쳐 마음대로 한다 file 아우라 2022.10.25 69
155 (951) 만고장야(萬古長夜) - 만년의 오랜 세월 동안 긴 밤이 된다 file 아우라 2022.10.18 68
154 (943) 궐의신언(闕疑愼言) -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그 나머지만 신중하게 말하다 file 아우라 2022.08.23 68
153 (942) 유진등고(油盡燈枯) - 기름이 다하면 등불이 꺼진다 file 아우라 2022.08.16 68
152 (871) 고희지년(古稀之年) - 옛날부터 드문 나이 1 아우라 2021.03.16 66
151 (859) 이지교법(以智矯法) - 꾀로써 법을 바꾸다 file 아우라 2021.02.02 62
150 (875) 타비아시(他非我是) - 다른 사람은 글렀고, 나는 옳다. 곧 내로남불 아우라 2021.04.13 6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 9 Next
/ 9
후원참여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후원참여
연학
후원회
자원봉사참여
회원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