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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고보 설립 주도해 현 진주여고 개교

진주청년회 등 각종 단체 기부·후원

저항적 기사 쓴 중외일보 주주에 이름도

해방 후 구인회와 본격 동업의 길 시작

 

2000년, 오래되고 낡은 진주여자고등학교 건물을 허만정의 다섯째 아들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이 사재 100억원을 기부하여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정으로 신축하였다.

진주여자고등학교 효주기념관에 일신역사관이 있다. 이곳에는 ‘허준·든든한 지원군 배(培)·다지다’, ‘허만정·신념으로 헌신한 건(建)·세우다,’ ‘허완구, 애정으로 뿌리를 돌본 속(續)·잇다’로 구분하여 세 분과 진주여고와 관련된 기록이 정리되어 있다. 전편에 이어 연대순으로 허만정의 일대기를 정리해 보았다.

 

1 일신고등보통학교 교사 설립 현장, 사진 속 임술(壬戌)은 1922년이다. 공사 현장은 지금의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이고, 사진 뒷면이 비봉산이다.
일신고등보통학교 교사 설립 현장, 사진 속 임술(壬戌)은 1922년이다. 공사 현장은 지금의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이고, 사진 뒷면이 비봉산이다.

 

# 1920년, 재단법인 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

허만정은 1920년 3월 진주에 사립 ‘일신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고 5월 1일 친구 하영진을 비롯한 102명이 참여하여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였다.

처음부터 일신고보 설립에 주도적이었던 허만정은 아버지 허준에게 말씀드려 논 9만3000여평, 밭 3만5000여평과 현금 7만원을 재단의 설립 기금으로 출연하였다(기금의 숫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가 거론되어 명확하지는 않다).

 

일신고등보통학교 최초의 본관 설계 도면, 건축자재는 연와로 진흙에 모래나 석회를 넣고 혼합하여 불에 구워 낸 벽돌이다./효주가장/
일신고등보통학교 최초의 본관 설계 도면, 건축자재는 연와로 진흙에 모래나 석회를 넣고 혼합하여 불에 구워 낸 벽돌이다./효주가장/

 

# 1925년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개교

1922년 설립자 총회를 거쳐 1923년 3월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관청은 사립으로 세워지는 일신고보의 설립에 압력을 넣고 결국에는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인가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허만정과 일신재단은 오직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25년 4월 25일 사립학교인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진주여자고등학교) 개교를 하였다. 학교가 세워진 자리는 옛 금성초등학교가 있었던 현재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이다.

 

1930년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사진 전경./경상국립대학교/
1930년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사진 전경./경상국립대학교/

 

# 허만정의 일신여고 교장 기록 찾아

경성일보(京城日報) 일본어판 1927년 5월 21일자 신문기사에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 이사장이자 교장인 허만정이 학교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내용에 관한 보도가 있다. 허만정은 일신여고 설립자로만 알려져 왔었다. 허만정이 교장을 사직하였다는 기사를 근거로 일신여고의 역사와 허만정의 일대기도 다시 한 번 연구해 볼 중요한 주제라 생각한다.

 

허만정이 교장을 지냈다는 기사가 실린 1927년 5월 21일자 경성일보.
허만정이 교장을 지냈다는 기사가 실린 1927년 5월 21일자 경성일보.

 

# 봉산고등여학교 교명 변경과 폐교 조치

1925년 4월 25일 개교 후에도 일본관청은 교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신(一新)이란 이름에 트집을 잡아 1938년 4월 진주 봉산고등여학교로 교명을 변경시켰고, 1939년 3월 마지막 졸업식을 거행하고 4월에 폐교시켰다. 사립 봉산고등여학교는 공립으로 전환하면서 1939년 4월 학교 이름도 진주 공립고등여학교가 되었다. 1945년 3월에는 현 갤러리아 백화점 자리에 있던 진주 공립고등여학교 건물이 협소하여 비봉산 아래 진주여자고등학교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진주청년회 등 각종 단체 기부 및 후원

일제강점기 1920년대 진주에는 노농연맹, 진주청년회, 상업청년회, 형평사, 형평사청년회, 노형공제회 등 여러 단체가 있었다. 중외일보 1927년 12월 28일자 기사에 진주청년회 활성화를 위한 사무실 낙성식이 있었는데 허만정, 허선구, 하영진이 기부금을 납부한 기록이 있다. 1927년 5월 진주철교 개통식 기념 진주 관덕정 주최 궁술(弓術)대회가 남강변에서 개최됐는데 허만정과 허선구가 기부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 1928년 중외일보사 부사장

중외일보는 1926년 11월 창간되었다. 저항적인 기사와 사설로 인해 조선총독부의 기사 삭제 요구, 반복되는 휴간과 운영자금의 부족 등으로 중외일보는 1931년 9월 폐간되었다. 진주 지수 출신 허만정과 허치구, 진주 수곡 출신 하영진이 주주명단에 기록되어 있다. 중외일보 전신인 시대일보에 취체역(이사)을 하였다는 기록은 있다. 중외일보 부사장 관련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허만정은 1927년 3월 27일부터 동년 9월까지 동아일보 진주지국 승산분국 고문도 지냈다. 구인회는 1931년 3월 31일부터 10월 15일까지 동아일보 승산분국장을 지냈다.

# 허만정의 일본 유학설의 오해

1925년 왕성한 활동을 하던 도중 청년 허만정이 건강이 좋지 않아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첫 번째 편지 수신은 ‘일본 도쿄시 우시고메구 츠루마키정 23번지 영성관에 유숙하는 허만정에게’로 되어 있다. 두 번째 편지 수신은 일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이나다(稻田) 내과 일측 9호실로 되어 있다. 편지 내용은 아버지 허준이 아들 허만정이 일본에서 치료를 받는 데 마음가짐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나온다. 허만정과 관련하여 ‘일본에 유학을 가서 학문을 수학하였다, 동경한국인유학회에 기금을 기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허만정이 일본에 신병 치료차 머물면서 활동한 것을 유학 갔다는 것으로 오해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허만정, 구인회를 만나다

1929년을 기점으로 허만정의 대외 활동 기록은 찾기가 어려웠다. 일본에 저항하는 반일단체의 사회활동에 참여한 허만정이 일본 경찰의 요주의 인물 감시 대상이 되어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허만정은 1945년 해방이 되자 여러 정치단체에서 참여 요청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남북과 좌우 사상으로 갈라져 있는 분열 시기에 혼란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멈출 줄 알고 삼가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해방 후 허만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1946년 1월 부산 국제시장 내 조선흥업사 사무실에 3남 허준구와 함께 구인회를 찾아가 구씨 허씨 동업의 길을 시작한 것이다. 1948년 허만정은 마산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장남 허정구에게 이병철과 조홍제가 함께 설립한 삼성물산공사에 근무토록 하였다. 그 후 6·25전쟁 중 이병철이 부산에서 삼성물산㈜에 제일제당을 설립하자 상무로 참여하면서 이때 일부 자금 출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1951년 허만정은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부산 허준구 집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허준구의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에도 병이 호전되지 않자 스스로 예감을 한 듯 허만정은 “나의 평생 뜻이 성취되지 못한 채 여기에 이른 것은 어찌 운명이지 않겠느냐. 반드시 의리에 따라 실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52년 2월 부산에서 5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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