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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고난 속에 팔던 ‘아마쓰크림’ 인기로

허·구 4인방, 자체 ‘럭키크림’ 생산·판매

1947년 1월 부산에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부산 시내 영업·수금 담당 이사 허준구

회계부터 배달·홍보·판매까지 능력 탁월

 

공장의 증설이나 신설법인이 설립되면 허씨 집안에서도 자본과 사람이 참여했다. 허준구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한 사람이 허학구이다. 당시 장남 허정구는 제일제당에 근무 중이었다.

세 번째로는 허만정의 사위 이연두가 부전동공장 설립 때 허씨 집안 사람으로 참여했다. 네 번째는 1953년 락희화학이 서울 사무소 운영 때 허만정의 넷째 아들 허신구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참여했다.

락희화학에 관해 연관된 내용은 2023년 2월 필자의 글을 청미디어에서 출판한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을 선행해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부산 대신동에 있었던 연암 구인회의 자택이자 공장이다. 1947년 이곳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동동구리무를 최초로 생산하였다. LG그룹이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구인회 회고록/
부산 대신동에 있었던 연암 구인회의 자택이자 공장이다. 1947년 이곳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동동구리무를 최초로 생산하였다. LG그룹이 태동한 곳이라 할 수 있다./구인회 회고록/

 

# 허준구 첫 번째 과제, 동동구리무 판매

구씨 집안 사람은 물론 허준구도 ‘아마쓰크림’을 지고, 메고 서울 남대문 시장으로 가져갔다. 납품하는 소매점 한 곳 없이 서울에 화장품 판매점을 찾아 아마쓰크림을 소개하였지만 국산품이라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서울의 도소매 상인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찾아가 설명하였지만 쉽게 거래되지 않았다. 허준구는 말 못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만석꾼 집안의 귀한 아들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 온 23세의 엘리트 젊은이가 감내하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좌절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으로 부단한 노력 끝에 시장개척 몇 개월이 지나자 소문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해방과 함께 유입된 서구문화, 근대문화의 특징은 여성들에게 옷과 화장품이 생활의 필수품이었다. 사회의 변화는 여성의 화장문화까지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해방과 함께 아마쓰크림은 가격도, 품질도 적당하여 하루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났다.

마침내 생산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크림을 생산하는 흥아화학공업사 사장은 기술자 김준환과 처남 매부 관계이다. 뜻하지 않은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김준환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구인회는 아마쓰크림 공급을 받을 수 없는 위기였다. 김준환이 “내 기술로 크림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구인회는 함께 크림공장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김준환이 만들고 조선흥업사가 판매하는 형태로 협의하였다.

 

구인회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체 상품 이름을 ‘럭키크림’이라 하였다. 1947년 생산한 행운을 주는 럭키(LUCKY, 樂喜)크림./구인회 회고록/
구인회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체 상품 이름을 ‘럭키크림’이라 하였다. 1947년 생산한 행운을 주는 럭키(LUCKY, 樂喜)크림./구인회 회고록/

 

2012년 락희화학 설립 및 럭키크림 출시 65주년을 기념하여 LG생활건강에서 ‘럭키크림 더 클래식’을 출시하였다.
2012년 락희화학 설립 및 럭키크림 출시 65주년을 기념하여 LG생활건강에서 ‘럭키크림 더 클래식’을 출시하였다.

 

# 화장품 공장을 설립하다

구인회가 자택을 개조하여 작은 공장을 세웠다. 집 마당에 구인회 형제와 허준구, 김준환이 다 모였다. 김준환이 숙달된 실력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배합하고 복잡한 공정을 거친 후 크림을 만들어 냈다. 첫 생산에 성공한 조선흥업사는 “우리가 생산하는 크림에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이름을 지어서 우리 상표로 판매하자”고 하여 허·구 4인방은 대책회의를 하였다.

구정회가 “지금 우리 사회가 화장품은 서양의 제품을 인정하는 시대이다. 우리가 만든 크림도 서양 제품처럼 크림 통에 예쁜 서양의 여배우 사진을 붙이자. 그리고 영어로 이름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름이 ‘럭키크림’이다. 영어 표기는 ‘Lucky Cream’이다. 한자 표기로는 영어 럭키와 발음이 비슷한 ‘락희(樂喜, 즐거울 락, 기쁠 희)’로 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행운과 즐거움을 주는 Lucky와 락희, 영어와 한자의 뜻과 발음이 일치하였다. 모두가 최고의 명작이자 상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허준구, 락희화학 영업담당 이사

구씨 허씨가 동업을 한 후 최초로 설립한 사업체가 럭키크림을 전문으로 생산 및 판매를 한 ‘락희화학공업사’이다. 1947년 1월에 설립하였다. 부산시 서대신동 3가 13번지는 구인회의 집이자 공장이고 사무실이다. 자본금 300만원에 종업원은 20명 규모였다.

럭키크림의 판매가 단순한 형태의 조직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매출이 늘어났다. 수요에 맞춰 생산시설이 늘어나자 규모에 알맞은 직원도 필요하였다.

초기 락희화학 주요부서의 책임자는 구인회의 동생과 아들 형제, 그리고 허준구 등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공장 총괄 사장에 구인회를 중심으로 구철회는 대구지역 판매 총괄, 구정회가 원료의 섭외와 관청업무를 맡았고, 구태회는 연구개발을, 구자경은 생산 담당을, 허준구는 부산 시내 영업과 수금 담당 이사였다. 구자경의 동생인 구자승이 경리와 출납업무를 담당하였다.

 

럭키크림의 수요가 급증하자 효율적인 생산과 영업, 관리를 위하여 락희화학공업사는 자체 업무 조직을 편성하였다.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후 업무분장표이다.
럭키크림의 수요가 급증하자 효율적인 생산과 영업, 관리를 위하여 락희화학공업사는 자체 업무 조직을 편성하였다. 락희화학공업사 설립 후 업무분장표이다.

 

# 숫자의 달인 허준구

허준구에 대한 평가는 ‘숫자의 달인, 회계의 달인, 금전관리의 달인’이다. 구인회도 모든 회계나 장부정리는 허준구에게 물어보라고 할 정도였다. 신뢰감이 좋아 도·소매상으로부터 수금도 잘하여 공장 건립 자금을 제때 지원하여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였다.

허준구는 영업 분야에도 대단한 자질이 있었다. 락희화학은 초기에 럭키크림을, 그후 플라스틱 일용품인 빗과 비눗갑을 ‘오리엔탈’이라는 상표로 생산하였다. 그리고 치약도 개발하였다. 1954년 락희화학이 김치 먹고, 된장 먹는 한국인을 위한 럭키치약을 개발하자 허준구는 부산에서 직접 리어카에 치약을 싣고 국제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배달과 홍보, 판매하는 1인 다역이었다. 같은 시기 동생 허신구는 서울에서 영업부장으로 동대문, 남대문 도매상인들을 휘젓고 다녔다.

# 구심허심(具心許心)

구심허심이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미”로 필자가 소제목을 만들었다.

창업세대 구씨와 허씨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 등 정치와 사회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산업화, 도시화, 글로벌화 경제시대를 지나 디지털화, 첨단화 시대까지 반세기 넘게 함께 달려왔다. 기업 경영에는 구씨 집안이 주(主)가 되고 허씨 집안이 부(副)가 되어 일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상하(上下)관계가 아닌 상대에 대한 배려, 존중과 겸손이 늘 함께하였음을 느낄 수 있다.

불문율(不文律)로 정해진 것인지 아쉽게도 아직까지 구씨 허씨의 자본투자 비율과 역할 분담론에 대해 인용할 만한 기록물은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구씨 허씨의 동업은 현재까지 한국 경제사에 가장 성공한 동업 사례로 평가를 하는데 의견을 달리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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