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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가 지수에 있던 허학구에게 맡겨
순찰·청소 등 힘들고 궂은일까지 앞장
플라스틱 생산공장 주역으로 자리매김
1969년 구인회 사망 후 경영 일선 물러나
1968년 세운 새로닉스 전신 정화금속 경영

 

락희화학공업사는 럭키크림 화장품 생산 외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기로 하였다. 1951년 10월, 미국에서 사출성형기와 금형기를 주문하고 부산 범일동 884번지에 새 공장터를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장 설립을 책임지고 일을 할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부산 대신동 럭키크림 공장. 이곳은 구인회의 사택이자 공장으로 럭키크림을 최초로 생산한 곳이다.
부산 대신동 럭키크림 공장. 이곳은 구인회의 사택이자 공장으로 럭키크림을 최초로 생산한 곳이다.

 

# 허학구의 락희화학 참여 배경

구인회 사장은 진주 지수면 고향에서 본가를 지키고 있던 허학구를 불러 들였다. 이것이 허학구의 기업 참여 배경이다.

철판으로 막은 틈새로 모래바람의 외풍 속에 공장을 짓는 환경이라 공장 설립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이곳 현장에서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이었다.

허학구는 구자경보다 나이가 13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일과 궂은일을 앞서서 하며 락희화학 플라스틱 공장을 설립하는 주역이 되었다.

전무 허학구, 상무 구자경으로 직함만 번듯한 임원이지만 실제는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막일꾼이나 다름없었다. 이불도 없이 군용 슬리핑백에서 새우잠을 자며 현장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한다.

게다가 밤늦게까지 공장설립과 생산에 온 힘을 다 쏟아부었다면 다음날 새벽 5시면 일어나 빗은 200개를 한 묶음으로, 칫솔은 500개를 한 묶음으로 포장을 해 놓아야 하였다. 상인들이 제품을 구입하러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시간 절약을 위해서였다.

# 구경꾼 있나

이런 허드렛일까지 하였기에 허학구, 구자경은 ‘범일동 생산공장 지킴이’, ‘범일동 생산공장 구경꾼’으로 불렸다. 구인회 사장이 공장에 출근하여 “구경꾼이 있나” 하면 초기에는 공장 방문객이 찾아온 것인가 하는 오해의 답변도 있었다. ‘구경꾼’은 허학구의 ‘구’와 구자경의 ‘경’을 조합한, 두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판매량이 늘어 하루 24시간 공장을 가동하여도 주문 수량을 맞출 수가 없었다. 기계가 작은 고장이라도 발생하면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되었다.

또다시 절대적으로 관리 인력이 부족하자 허학구가 자형 이연두를 범일동 공장에 참여하도록 제안을 하였다.

# 이연두의 참여

이연두는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어 기계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공장 운영에 다양한 일을 할 능력을 가진 분이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분이었다. 이렇게 하여 범일동 공장은 허학구, 구자경, 이연두 삼총사가 이끌어 나가는 ‘범일동 공장 지킴이 삼총사’로 불렸다.

하지만 도소매 가계 납품, 군납 물품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24시간 공장 가동을 하여도 역부족이었다. 주문을 덜 받거나 새로운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 수량을 늘리는 것 외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허학구와 구자경, 이연두는 구인회에게 미래 수요를 예측한 보고서를 들고 가 새로운 공장을 하나 더 건립하자고 제안하였다.

 

락희화학 부전동 공장. 플라스틱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1953년 설립한 공장이다. 종업원을 위한, 종업원을 위해, 종업원의 회사라는 구호가 보인다.
락희화학 부전동 공장. 플라스틱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1953년 설립한 공장이다. 종업원을 위한, 종업원을 위해, 종업원의 회사라는 구호가 보인다.

 

# 부전동 공장

어느 날 이연두가 부자를 만들어 준다는 이름을 가진 부전동에 공장 설립 조건에 부합되는 공장터를 찾았다. 공장터 부근에 변전소가 있어 전기 공급도 좋은 환경이었다.

1953년 6월, 범일동 공장 지킴이 삼총사에게 구인회 사장이 부전동 공장 조기 달성 명령을 내린다.

부전동 공장이 완공되자 구자경이 대표로 있던 동양전기를 락희화학에 편입시키고, 동양전기에서 생산된 오리엔탈 상표를 모두 ‘럭키’로 변경하여 유사, 모조품의 출현에 대비하였다.

# 부전동 공장 지킴이 삼총사

부전동 플라스틱 제품 생산 공장이 완공되자 구인회는 공장을 총괄 관리하는 전무이사에 허학구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상무에 구자경을, 부전동 공장장에는 이연두가 임명되었다.

삼총사는 이렇게 대외적으로 부전동 공장의 중요한 관리자 직책을 가졌음에도 공장 야간 순찰, 숙직, 수문장, 청소, 식사 당번까지 부전동 공장 지킴이 삼인방의 하는 일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구자경 회장은 회고록에서 “당시 함께 고생한 허학구와 그의 자형인 이연두와 나는, 공장 지킴이 삼총사로 공장일도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잘 맞은 게 있는데 그것은 술(酒)이었다”고 즐거운 회고를 남겼다.

 

락희화학 연지동 공장. 1955년 설립된 공장으로 한국의 플라스틱 공업의 시작으로 화학제품과 비누, 치약 등 생활용품을 생산한 곳이다.
락희화학 연지동 공장. 1955년 설립된 공장으로 한국의 플라스틱 공업의 시작으로 화학제품과 비누, 치약 등 생활용품을 생산한 곳이다.

 

락희화학 연지동 공장 앞에 세워진 금성사 연지동 공장. 공장을 집객화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이곳에서 금성사 최초의 라디오 A501이 생산되었다.
락희화학 연지동 공장 앞에 세워진 금성사 연지동 공장. 공장을 집객화하여 효율성을 높였다. 이곳에서 금성사 최초의 라디오 A501이 생산되었다.

 

# 연지동 공장

전쟁 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합성수지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범일동 공장, 부전동 공장에 이어 세 번째로 연지동 공장이 1954년 10월 완공되었다. 연지동 공장은 구인회에게 남다른 사연이 있는 곳이다. 1967년 서울로 이사를 갈 때까지 이곳에 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회사를 크게 키웠다. 연암(蓮庵)이라는 호(號)도 이곳 연지동 집 뒤편에 있는 연지암에서 인연이 되어 작명을 하였다. 연지동 공장은 플라스틱 외 비닐제품 생산도 하였다.

1950년대 락희화학의 최고의 히트는 한국 치약의 대명사가 된 럭키치약 개발일 것이다. 이 치약을 이곳 연지동 공장에서 생산하였다.

범일동 공장, 부전동 공장이 플라스틱 사업의 여명이라면 연지동 공장은 치약을 비롯한 플라스틱 생활용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산실이라 할 수 있다.

# 금성전선 부사장 허학구

구인회는 1966년 4월, 안양에 한국케이블공장을 완공하였다(1969년 회사명이 금성전선으로 변경). 허학구는 이 회사의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69년 구인회의 사망으로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구철회와 구정회 등 창업 원로들은 후임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1967년 5월 퇴임설의 기록도 있음). 이때 허학구도 락희그룹에서 은퇴를 하고 본인이 1968년 설립한 정화금속주식회사로 돌아갔다.

 

금성사 온천동 공장. 금성사는 1964년 3월 부산 온천동에 종합 전기기기 공장을 완성, 국내 전자산업 중심축으로 성장하여 나갔다./구인회 회고록·금성사 30년사/
금성사 온천동 공장. 금성사는 1964년 3월 부산 온천동에 종합 전기기기 공장을 완성, 국내 전자산업 중심축으로 성장하여 나갔다./구인회 회고록·금성사 30년사/

# 허학구의 독립, 새로닉스그룹 설립

허학구는 인쇄회로기판(PCB),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을 생산하는 정화금속㈜을 1968년 설립하여 가지고 있었다. 금성전선 부사장 은퇴 후 정화금속을 경영하던 중 1999년 작고하였다.

외아들인 허전수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허전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락희그룹에서 일을 하지 않고 1974년부터 아버지가 설립한 정화금속 총무이사로 근무하여 왔었다.

# 자녀관계

허학구는 슬하에 외아들 허전수를 두었다. 1968년 아버지가 설립한 정화금속을 1999년 물려 받았다. 2000년에 회사 이름을 주식회사 새로닉스(Seronics)로 변경하고 계열회사를 설립하여 새로닉스그룹을 형성하였다.

지금은 3세대인 장남 허제홍이 새로닉스 대표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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