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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락희화학 서울사무소 허신구 업무부장 취임’

1953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허신구의 경영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허신구의 역할은 락희화학에서 생산되는 비누, 비눗갑, 칫솔 등을 서울에서 판매하는 것과 정부의 각종 인허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1929년 허만정 4남으로 출생
지수초·동래고·부산대 졸업
1953년 락희화학 성장 시기
서울사무소 업무부장 입사
비누·비눗갑·칫솔 등 판매
정부 각종 인허가 업무 담당

 

# 허신구와 학교

허신구는 1929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허만정의 4남으로 태어났다. 지수초등학교 18회(1941년) 졸업생이다. 부친 허만정은 일본인 교사 배격운동, 일본상품 불매운동, 광주고보 학생의거와 연합, 일본제국주의 행사 거부 등으로 부산에서 항일 민족의식이 강한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진학토록 하였다. 허신구에게 항일 민족정신을 배우도록 무언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허신구는 동래고등학교 27회 졸업생이다. 그리고 1950학번으로 부산대학교 상학과에 입학하였다.

허신구의 학창시절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해방, 6·25 전후에 걸쳐 있다. 나라와 사회가 혼란기라 그런지 허신구의 유년시절과 학교생활에 대해 기록된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허신구는 가정용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개발하여 대한민국 주부들을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게 한 혁신 기업가이다./허신구 평전/
허신구는 가정용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개발하여 대한민국 주부들을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게 한 혁신 기업가이다./허신구 평전/

 

# 동생이 기억하는 허신구

8형제 중 여섯 번째인 허승효 알토그룹 회장이 기억하는 허신구에 대한 내용이다.

“넷째 신구 형님은 성격이 남자답고 활달하시며, 화통한 경상도 사나이였다.”

허신구 장남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은 “아버지 허신구는 어릴 때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에다 문제아였다. 성격이 곧고 직선적이었다. 그리고 부잣집 아들이라도 성격이 의협적이고 활달하여 동네 어른들이 좋아하였다”고 하였다.

허신구에 대해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진 동생이 7남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형 허신구에 대한 회고 내용이다.

“1960년대 초반, 나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허학구 둘째 형님댁에서 보성고등학교를 다녔다. 허신구 형님집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당시 락희유지공업사 상무로 있던 신구 형님은 군용 지프 비슷한 새나라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등굣길에 형님을 만나면 혜화동 로터리 학교 인근까지 태워 주었다. 차에서 내릴 때면 수시로 용돈도 챙겨 주었다. 17세의 나이 차이로 매우 어려워하였는데 형님은 동생에게 애정표시도 잘 안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겨울 어느 날, 형수가 불러서 집에 갔더니 감색 반코트를 주면서 학교 다니면서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하였다. 의외로 자상한 면모도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하였다.

“신구 형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유년기, 청년기는 겹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 제사 때는 고향 승산리에 형님이 오시기에 우리는 “어, 잘생긴 신구 형님 오셨네” 하고 반겼고, 형님은 나이 어린 동생에게 꿀밤을 주었다.”

 

 

# 허신구를 데려오라

1953년 허신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서 해운업을 하는 조선통운에 입사를 하였다. 구인회는 휴전이 되면 정부가 서울로 환도할 것이라 예측하였다. 회사 인·허가 업무와 관련하여 서울에서 발생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에 연락 사무실을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1953년 5월 구태회 전무를 먼저 서울로 보냈다.

락희화학이 성장하는 만큼 정부 인·허가, 생산하는 만큼 시장개척, 판매되는 만큼 배달, 수금 업무에 절대적으로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구인회의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사람이 허신구였다. 부산에서 대학생으로 가끔 봐 온 허신구에 대해 재능도, 성격도, 체력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구인회의 조카 사위인 허준구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뢰가 갔다.

1953년 초여름, 조선통운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허신구를 구인회가 락희화학 공장으로 불렀다.

“내가 자네 뒷조사를 다 해보았어. 다른 말 하지 말고 락희화학에 출근하도록 하게. 자, 여기 기차표 끊어 놓았으니 내일 당장 서울로 가게.”

요청이나 부탁이 아니라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내리는 명령이자 지시였다.

허신구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허신구는 “당시 락희화학은 화장품 크림과 플라스틱 가공제품 공장을 설립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기업이었다. 부산에서도 제법 규모 있는 회사로 성장 중이라 큰 거부감은 가지지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서울역에 내린 허신구를 마중 나온 분은 락희화학 서울사무소장 구태회 전무였다. 허신구의 첫 직책은 락희화학 서울사무소 업무부장이었다.

 

동대문·남대문 시장 등서
상인들 직접 만나며 영업
1966년 국내 첫 합성세제
‘하이타이’ 개발·판매 신화
1976년 플라스틱 창호
‘하이새시’ 히트상품 남겨

 

# 쉽지 않은 서울에서의 활동

서울에 락희화학 제품을 취급하는 판매점은 전무한 상태였다. 허신구는 처음부터 무조건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 등 도소매 가게가 있는 현장에 가서 상인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영업 활동을 위한 사회 환경도 쉽지 않았다.

허신구의 회고이다. “1953년은 북한과 휴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전시 시기이다. 당시에 한강 이남에서 한강 이북으로 가려면 군사작전 지역이 많아 강을 건널 수 있는 도강증이 있어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한강 이남, 이북으로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곳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기라 생필품 시장은 국산품은 전무하고 대부분 외국산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국산 제품은 조잡하다 하여 잘 취급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 허신구는 어떻게 하면 락희화학 제품을 공급하고 많은 시민들이 락희 제품을 알아줄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허신구식 영업 전략은 “소비자가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가 소비자를 찾아가면 된다”였다.

 

하이타이는 락희화학에서 생산한 제품의 상표인데 합성세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제 주세요” 표현보다 “하이타이 주세요” 하면 더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정도였다./LG생활건강/
하이타이는 락희화학에서 생산한 제품의 상표인데 합성세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제 주세요” 표현보다 “하이타이 주세요” 하면 더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정도였다./LG생활건강/

 

1966년 4월 10일 락희화학 안양공장에서 하이타이를 최초로 생산하였다.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제목이 보인다./1967년 5월 27일 매일경제신문/
1966년 4월 10일 락희화학 안양공장에서 하이타이를 최초로 생산하였다.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제목이 보인다./1967년 5월 27일 매일경제신문/

 

# 락희화학의 전설, 하이타이와 하이새시

허신구는 락희화학공업사, 락희유지공업㈜ 근무 때 두 가지 히트상품 판매 신화를 남겼다. 1966년 최초의 세제 ‘하이타이’ 개발과 1976년 플라스틱 창호 ‘하이새시’이다(구인회와 엘지그룹 회장, 기록 참고). 홍종우 LG고문은 “하이타이는 허신구 기획, 허신구 주연, 허신구 연출로 탄생한 신상품이다”라고 하였다.

1950~1960년대 은행은 정부가 보유한 달러를 제한된 금액으로 수입자에게 매도하였다. 이 달러만큼 외국 물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 때로는 선착순으로 달러를 배분할 때도 있었는데, 허신구는 한겨울에 담요를 둘러싸고 은행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달러를 배정받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2022년 하반기 지수 K-기업가정신센터에 강사로 참여하였는데 교육에 참석한 원로 한 분이 “내가 20대 초반 갓 은행에 입사하여 수출입 업무를 담당할 때 신용장을 가지고 달러를 구매하러 오신 젊은 분이 허신구였다”라고 당시의 희미한 기억을 필자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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