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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럭키금성그룹 사업별 회장제 도입
허신구, 그룹 부회장 겸 ㈜럭키 부회장
1989년 럭키석유화학 회장으로 경영하다
1995년 은퇴 후 LG그룹 창업 고문 등 역임

2004년 LG·GS 분리 때 잡음없이 마무리
1953년부터 혁신적인 경영·사고로
한국 경제·경영사에 수많은 기록 남겨

 

구인회 회고록에는 1968년부터 락희화학공업사 회장 구인회라는 직함을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구인회는 락희그룹 회장으로도 불렸다. 구자경은 1974년 ‘럭키그룹’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83년에 다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다. 1995년 구본무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LG그룹’이 되었다.

 

# 럭키금성그룹 회장제 도입

구자경은 1988년 12월, 주요 계열사를 유사한 업종으로 묶어서 사업별 단위 회장제를 실시하였다. 허준구는 금성전선 회장과 그룹 총할 부회장으로, 구평회는 그룹 부회장 겸 럭키금성사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허신구는 그룹 부회장 겸 ㈜럭키 부회장으로 그리고 1989년에 럭키석유화학 회장에 취임하였다. 구자학은 그룹 부회장 겸 금성반도체 회장에, 구본무는 그룹 부회장 겸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유사 업종을 묶어서 회장제를 도입하고 창업 1세대 공신들에게 맡겼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영 최전선에는 전문 경영인 사장을 배치하였다. 이것은 창업 1, 2세대 공신들을 예우하면서 동시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다는 의미도 있다. 또 하나의 큰 의미는 구자경에 이어 3세대 그룹 경영인으로 구본무 부회장의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경영수업도 내포된 인사였다.

 

부산대학교 상학과 1950학번인 허신구의 모교사랑은 대단하였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게 2018년 6월 부산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국제관 로비에 허신구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부산대학교 상학과 1950학번인 허신구의 모교사랑은 대단하였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게 2018년 6월 부산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국제관 로비에 허신구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 허신구 회장의 은퇴

허신구는 1989년부터 럭키석유화학 회장으로 경영현장을 이끌다가 1995년 구본무 회장 체제로 진입하자 은퇴를 하였다.

허신구뿐만 아니라 창업고문단, 창업 공신 등 창업과 관련된 멤버들 모두가 2선으로 경영 최일선에서 물러났다. 후배들에게 경영활동의 폭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일선에서 은퇴한 허신구는 1995년부터 ‘LG그룹 창업 고문’ 직책을 맡았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LG유통 명예회장을 하였다.

허신구는 2004년 LG와 GS의 계열 분리를 할 때 허씨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허씨 일가가 GS그룹에서 분리될 때 LG전선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가 논의될 때 물러섬을 알고 결단을 실천한 분이다.

허신구 자신도 1969년 설립된 금성전선(LG전선)에 1970년부터 1971년 사장으로 취임하여 초기 기틀을 다졌고, 이어 형 허준구가 1971년 부터 1982년 까지 금성전선 사장으로 취임하여 수많은 난관을 뚫고 견실한 한국의 중심 전선기업으로 만든 것이니 허씨 집안에서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부산대학교 상학과 1950학번인 허신구의 모교사랑은 대단하였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게 2018년 6월 부산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국제관 로비에 허신구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부산대학교 상학과 1950학번인 허신구의 모교사랑은 대단하였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게 2018년 6월 부산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국제관 로비에 허신구 흉상 제막식이 있었다.

 

# 허신구의 경영 평가

허씨 3형제는 구인회를 중심으로 한 구씨 집안과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 이상을 함께하였다. 형 허준구가 구씨 형제들과 함께 집을 건축할 터를 다지고 주춧돌과 기둥을 세웠다면 허신구는 집을 쌓아 올리고 건축에 필요한 물건을 수레에 싣고 옮겼다고 할 수 있다.

구씨와 허씨의 선을 넘지 않는 아름다운 경계의 구분은 허준구와 허신구 형제에게도 두 개의 몸, 하나의 생각이 되게 한 절묘한 역할 분담의 기준도 되었다.

허신구의 경영 기록사의 시작은 1953년부터 시작되어 2007년까지이다. 특히 락희화학과 금성사 사장을 하면서 전설적인 추진력과 혁신적인 사고로 한국 경제·경영사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끝으로 필자는 허신구 회장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가장 허신구다운 허신구의 표현을 만들어 보았다. ‘경영자 허신구는 기적 같은 현실을 만드는 분’이다.

 

# 허신구의 대외활동

허신구는 왕성한 경영활동을 한 만큼 대외활동도 적지 않다. 1970년 한국합성수지제품수출조합 설립과 이사장 역임, 한국전자공업진흥회 회장, KAIST 부이사장, 한국종합기술금융주식회사 이사회장, 정밀화학공업진흥회 회장, 생활용품수출조합 이사장,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럭키금성그룹 부회장 재직 중 스포츠 분야에도 활동을 하였는데,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대한조정협회 회장을 지냈다. 재직 중 1987년에는 아시아조정연맹 회장까지 추대를 받았다.

 

허만정의 자녀 8형제 중 유일하게 허신구 회장만 ‘허신구 평전’을 남겼다. 이 평전을 통해 혁신기업가 허신구의 경영활동과 당시의 한국경제 그리고 락희화학에서 시작한 LG그룹과 GS그룹에 대해 기본적인 기록을 접할 수 있었다. 부산대학교 출판국에서 2020년에 출판하였다.
허만정의 자녀 8형제 중 유일하게 허신구 회장만 ‘허신구 평전’을 남겼다. 이 평전을 통해 혁신기업가 허신구의 경영활동과 당시의 한국경제 그리고 락희화학에서 시작한 LG그룹과 GS그룹에 대해 기본적인 기록을 접할 수 있었다. 부산대학교 출판국에서 2020년에 출판하였다.

 

# 아들이 본 아버지 허신구

2020년, 허신구 평전이 발간되었다. 허준구의 화보집과 허신구 평전만이 허씨 형제가 남긴 유일한 기업 관련 기록물이다.

허신구 평전의 맺음말에 큰아들 허경수 코스모 회장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글이 있어 일부 정리하여 옮겨 보았다.

허신구의 한자는 許愼九이다. ‘아홉 번 신중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호는 고요함을 뜻하는 정산(靜山)이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장래 성격이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 허만정은 신구의 미래를 예측하고 ‘9번 생각하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일까? 경영인이 된 허신구의 성격은 아주 활동적이었다. 다혈적인 부분도 많았다. 이런 성격이 기업 창의나 신제품 개발에는 혁신 중의 혁신이 되어 성과를 만들기도 하였다. 주변에서는 ‘성질 좀 낮추고 고요해져라’는 뜻으로 호(號)를 정산(靜山)으로 만들어 주었다.

신(愼, 삼가함)은 허신구 집안의 대표적인 교훈 중 하나이다. 이름 속에 ‘조심하고 조심하여 바른 생활을 하여라’라는 의미이다.

허씨 형제들은 이를 잘 준수하여 구씨와 협업하면서 단 하나의 잡음도 없었다.

활을 쏠 때 과녁을 보는 것처럼 방심하지 않고, 얇은 얼음물을 밟듯 신중하라. 현대 사회에 이보다 더한 교훈과 비교가 또 어디 있을까.

 

# 자녀 관계

허신구 회장은 LG와 GS로 계열사가 분리된 후 2005년부터 GS리테일 명예 회장으로 재직 중 2017년 2월 5일 작고하였다. 허신구는 장남 허경수와 차남 허연수 형제를 두었다.

허경수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75학번이다. 1981년부터 17년간 LG상사, LG전자 해외 법인 등 이사로 근무하다가 사직하였다. 허경수 회장은 아버지 허신구 평전에서 1990년대 말, 구씨 허씨 자식들이 많아지면서 계열사의 지분 관계가 아주 복잡하였다. 일부는 LG를 떠나야할 이유도 있었다. 이때 허경수는 “경영에 감각이 있고 재능 있는 동생 허연수가 LG에 그대로 남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별도의 사업을 하였다”고 하였다.

허경수의 동생을 위한 겸손의 표현도 있지만, 동생의 능력을 믿고 멈출 줄 아는 선대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선비 경영인이라고 하겠다.

독립 후 처음 시작한 사업은 1998년 아버지 허신구가 남긴 건물관리를 위한 코스모양행의 경영이었다. 이후 코스모화학, 코스모신소재 등의 법인체를 운영, 지금의 코스모 그룹을 형성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1981년 설립된 코스모화학은 현재 화학 소재 관련 제조업을 유통하는 기업으로 2차 전지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허신구의 차남 허연수도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 LG상사 싱가포르 지사에서 첫 근무를 하였다. 유통 전문 경영자로 성장, 편의점 브랜드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부회장이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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