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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입사 17년 만에 금성전선 사장
1971년 락희화학공업사 사장 임명
국제화 수준 종합 화학회사로 성장시켜
PP마대 등 최초 개발제품 여전히 사용

1979년 핵심 계열사인 금성사 사장 취임
1982년 美 현지 생산공장 설립 완성
가전업계 첫 판촉 ‘허니문 세일’ 도입
부녀사원제로 여성의 사회진출 촉진도

 

1966년 1월, 락희화학공업사는 락희유지, 락희비니루공업 등을 합쳐 주식회사 락희화학공업사로 법인전환을 하였다. 사장에는 구인회, 부사장에는 허학구와 허준구. 전무에는 구평회가 임명되었다. 비상근이사로 구철회, 구정회가 등재되었다. 1969년에는 부산에 있던 본점과 그룹본부도 서울로 이전하였다. 회사 조직도 완전한 락희그룹 체제로 변화되었다.

 

# 금성전선 사장 허신구

1969년 12월, 락희그룹 설립자인 구인회 초대 회장의 작고로 장남인 구자경이 1970년 1월 제2대 락희그룹 회장에 취임하였다. 구자경은 허신구를 금성전선㈜ 사장에 임명하였다.

허신구가 입사 17년 만에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된 것이다. 금성전선은 설립 초기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모기업 금성사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망한 기업이었다. 구자경 회장이 41세의 젊은 허신구를 임명한 것은 기업 책임 경영을 직접 체험해 앞으로 더 큰 일을 하도록 배려하는 경영수업의 의중이 있지 않았을까?

제63회 전국체전이 1982년 10월 14~19일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체전 개최를 축하하는 시가 행진에 참여한 금성사의 제품 홍보가 흥미롭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락희그룹 상징인 네잎 클로버도 보인다. 41년 전의 사진을 독자가 보내주었다./최재영 고미술 창원방 대표/
제63회 전국체전이 1982년 10월 14~19일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체전 개최를 축하하는 시가 행진에 참여한 금성사의 제품 홍보가 흥미롭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락희그룹 상징인 네잎 클로버도 보인다. 41년 전의 사진을 독자가 보내주었다./최재영 고미술 창원방 대표/

 

제63회 전국체전이 1982년 10월 14~19일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체전 개최를 축하하는 시가 행진에 참여한 금성사의 제품 홍보가 흥미롭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락희그룹 상징인 네잎 클로버도 보인다. 41년 전의 사진을 독자가 보내주었다./최재영 고미술 창원방 대표/
제63회 전국체전이 1982년 10월 14~19일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체전 개최를 축하하는 시가 행진에 참여한 금성사의 제품 홍보가 흥미롭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락희그룹 상징인 네잎 클로버도 보인다. 41년 전의 사진을 독자가 보내주었다./최재영 고미술 창원방 대표/

 

# 락희화학 사장 허신구

1971년 구자경은 허신구를 다시 락희그룹의 원조기업이자 지주회사격인 락희화학공업사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구자경 회장은 허신구 사장을 믿고 회사의 기획과 경영, 영업 등 전권을 부여하였다. 허신구 사장은 락희화학을 국제화 수준의 종합 화학회사로 성장시켰다. 울산공장 건설과 석유화학 원료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여천공장 건설도 추진하였다.

또한 허신구 사장은 1973년 11월, 회사 내 ‘이미지 전략 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회사명, 사훈, 사기, 사가, 사색 등을 제정 및 개정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대 흐름에 부합하고 앞서가는 회사 이미지도 완성시켰다.

1974년, 구자경 회장은 락희그룹으로 불리던 대외 명칭을 ‘럭키그룹’으로 변경하였다. ㈜락희화학공업사 회사명도 간단하고 기억하기 쉽게 ‘㈜럭키’로 변경하였다.

허신구 사장은 1975년 1월, 기업 내부 소식을 전달하고 직원 간의 사내 소통을 위한 문화사업을 추진, ㈜럭키의 전 직원 통합 매개체가 되는 사보 ‘월간 럭키’를 창간하였다. 직원들의 반응이 좋자 그룹 전체의 사보 필요성을 제안하여 1978년 그룹 사보 ‘럭키그룹’을 창간하였다.

허신구 사장은 1975년 12월 부산 연지공장에 직업훈련소를 설치하여 기능인 수급도 원활하게 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능인을 양성하여 일자리를 찾아주는 기업의 사회공헌 정책도 추진하였다.

 

# ㈜럭키 사장 허신구

락희그룹에서 생산된 제품에는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제품이 많이 있다. 허신구가 ㈜럭키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개발한 것들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있다.

· 플랫얀(PP)마대 : 가마니를 대처한 벼나 보리 등의 곡물을 담는 백.

· 합성수지 배수용 연결구 : 주철로 된 아파트 오·배수관 파이프가 녹이 잘 생기는 문제점 개선.

· 하이펫트와 홈펫트 : 한국인의 방바닥과 마루에 많이 사용되는 장판 활용을 응용하여 개발한 탄력과 쿠션이 있는 생활용품.

· 자동차 시트용 인조가죽과 레자 개발 : 천연가죽을 대체.

· 젊은 층의 남녀 전용 비누인 데이트비누, 유니나 샴푸와 모발보호 제품 린스를 개발, 당대 최고의 제품이 되다.

 

# 금성사 사장 허신구

1977년부터 럭키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금성사는 해외 사업 진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기였다. 금성사의 미국 진출을 주도하던 분이 박승찬 사장이었다. 안타깝게도 1979년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자 구자경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락희화학 사장으로 근무한 허신구를 구원 투수로 불렀다.

금성사 사장에 취임한 허신구는 전임 박승찬 사장이 추진하다 중단된 아메리카 특급 계획을 완성시켰다. 이 계획은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설립(GSAI : Gold Star American Inc,)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을 미국 내수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금성사 기술력을 가지고 자본주의 국가의 심장 미국을 직접 소비시장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금성사는 1982년 10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시에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허신구 금성사 사장이 기획 추진한 신혼부부 대상 금성 허니문 세일. 이 제도는 물건 값의 10%만 내고 TV 냉장고 등의 금성사 가전제품을 먼저 구입하는 것으로,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금성 허니문 세일 광고 TV 화면/
허신구 금성사 사장이 기획 추진한 신혼부부 대상 금성 허니문 세일. 이 제도는 물건 값의 10%만 내고 TV 냉장고 등의 금성사 가전제품을 먼저 구입하는 것으로,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금성 허니문 세일 광고 TV 화면/

 

허신구 금성사 사장이 기획 추진한 신혼부부 대상 금성 허니문 세일. 이 제도는 물건 값의 10%만 내고 TV 냉장고 등의 금성사 가전제품을 먼저 구입하는 것으로,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금성 허니문 세일 광고 신문 광고/
허신구 금성사 사장이 기획 추진한 신혼부부 대상 금성 허니문 세일. 이 제도는 물건 값의 10%만 내고 TV 냉장고 등의 금성사 가전제품을 먼저 구입하는 것으로,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금성 허니문 세일 광고 신문 광고/

 

# 허신구가 도입한 금성 허니문 세일

1980년대, 허신구 사장은 유류 파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경기 불황이 계속되자 판매 활성화를 위해 가전제품을 필요로 하는 예비부부들을 대상으로 ‘금성 허니문 세일’을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소비자가 신용으로 먼저 제품을 외상 구매하고, 대금은 융자금 상환 형식이었다.

물건값의 일부만 내고 가전제품을 먼저 받은 후 분할하여 대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지금의 할부제도와 유사하다.

가전업계 최초 대소비자 판촉 캠페인이었다. 소비자가 부담이 없어 반응이 아주 좋았다. 지금이야 신용카드로 수개월 무이자로 구입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허신구 사장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영업 판촉 활동이 제품 생산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소비가 있어야 제품이 있다”라고 강조하였다. 1984년에는 주부와 여성이 판매하는 ‘부녀 사원제’를 도입하여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시켰다. 어떤 간담회에서 허신구는 “하이타이 개발로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리고 이 여유 시간을 부녀 사원제를 도입하여 경제활동을 하게 하였다”고 밝혔다. “이런 기획은 허신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1985년에는 판매 후 현금 리베이트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영업 방법도 도입하였다.

# 럭키그룹 최고 결정, 7인 집행위원회

구자경은 럭키그룹 내 구씨, 허씨 집안의 7인 집행위원회를 구성하였다.(그림 참조) 회의의 간사 역할로 범허씨 집안 이헌조 기획조정실장이 참석하였다.

구자경 회장은 그룹 경영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참여 멤버로는 구씨가에서 구자경을 비롯하여 구자승, 구자학, 구자도, 구자일, 구자극 등 6명이다. 허씨가 계열의 참석자는 허학구, 허준구, 허신구 형제와 허학구의 매형 이연두와 아들 이헌조 등 5명이다. 이 외에 박승찬, 윤욱현, 김주홍 등 3명의 외부 영입 인사들도 참석하였다.

이헌조(1932~2015년)는 락희화학공업사 부산 부전동 공장 설립 공신 이연두의 아들이다. 1957년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 그 후 금성사 설립 창립 주역이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금성사 사장을, 1995년 구본무 회장 체제에서 LG전자 회장을 지냈다.

구본무 회장 때도 LG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10인의 ‘그룹정책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위원은 창업 세대는 모두 빠지고 구본무 회장, 구자학, 구자홍, 허창수, 허동수 등 2, 3세대 멤버가 주축이었다.

 

이래호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기록 저자
이래호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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