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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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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망권(院長望圈) - 서원 원장에 추대하는 문서

 

  조선(朝鮮) 정조(正祖) 임금 때 유명한 정승 영의정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있었다. 그의 경륜이나 능력도 뛰어났지만 정조의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보호하려는 정성이 지극하였으므로 정조가 특별히 아꼈다. 그는 학문이나 문장도 뛰어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감탄할 정도였는데, 그 학통(學統)을 거슬러 올라가면 퇴계(退溪) 선생에게 닿는다. 어느 날 채정승이 입시(入侍)했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정조가 물었다. “매우 좋은 일이 있는가 보오?” “예! 그러하옵니다.” “과인(寡人)도 알았으면 하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를 도산서원 원장에 추대하는 망권(望圈)을 보내왔습니다.”

 

  하도 기뻐하는 안색이기에 정조가 “그 일이 그렇게 좋소? 지난 번 최고 관직인 영의정에 임명됐을 때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 영의정 임명보다 더 좋은가 보지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좋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과인도 한번 했으면 하는데?” “전하(殿下)께서는 할 수 없는 줄로 아뢰오”라고 했다.

 

  채제공이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지만 도산서원 원장을 더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이다. 채제공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향사하는 덕천서원(德川書院) 원장도 역임했다. 지난 6월 23일 소천(少泉) 조순(趙淳) 선생이 95세로 서거했다. 원래 경제학자로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88년부터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서울시장, 여야 당대표, 국회의원 등을 두루 지냈다.

 

  이런 경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러나 이 분의 경력을 보면, 그 전공과 관계없을 듯한 직책을 많이 지냈다. 도산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 덕천서원, 월봉서원(月峯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또 유림단체인 박약회(博約會) 고문, 한문고전 번역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등을 지냈고, 한시 창작 모임인 난사회(蘭社會)의 회원이다. 여러 서원의 원장을 맡거나, 한문과 관계된 단체에 관여한 것은, 탁월한 한문 실력 때문이다. 어려서 부친에게 한문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를 그만두면서 인사동에 소천서당을 열어 한문을 가르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 분의 댁 응접실에 도산서원 원장 망권(望圈)을 표구해서 걸어 두었다고 한다. 이 분이 “내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는 도산서원 원장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한시 짓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돌아가실 때 현임 덕천서원 원장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몇 백 개 퍼즐 맞추는 일을 매우 즐거워한다. 5만 자의 한자를 가지고 갖가지 생각을 담아내거나 어떤 일을 서술하는 일은 퍼즐의 즐거움에 비할 정도가 아니다. ‘망(望)’자는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권(圈)’자는 ‘동그라미 친다’, ‘낙점(落點)한다’는 뜻이다. ‘망권’이란 여러 사람들이 희망해 그 어떤 사람을 추대하는 동그라미를 친다는 뜻이다. 또는 그런 문서를 말한다.

 

*書: 글 서. *院: 집 원. *望: 바랄망. *圈: 우리 권, 동그라미 권.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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