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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선공후사(先公後私) -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돌린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에 염파(廉頗)라는 유명한 장수가 있었다. 큰 전공(戰功)을 세워 상경(上卿)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때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조나라에는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천하에 제일가는 구슬이 있었는데, 강국인 진(秦)나라에서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제안해 왔다. 조나라 왕은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진나라가 구슬만 차지하고 성을 안 주면 구슬만 빼앗기게 되어 입장이 곤란했다. 이때 인상여가 자진해서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진나라왕을 말로 꺾고 구슬을 빼앗기지 않고 돌아왔다.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나라 왕은 너무나 고마워 상경의 벼슬을 주었는데 서열이 염파보다 위였다. 염파는 화가 나서 단단히 별렀다. “나는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상경이 되었지만 저 인상여라는 자는 말만 잘하는 것으로 나보다 높은 벼슬을 얻다니? 가문도 형편 없어. 그 자를 만나면 여러 사람들이 보는 데서 심하게 욕보여야겠다.”

그 이후 인상여는 염파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 조정회의에도 아프다고 핑계 대고 나가지 않았다. 길에서 염파가 보이면 멀리서 미리 피해 다녔다. 인상여를 모시는 측근들이 “우리는 위대한 분이라고 모시려고 왔는데 이렇게 염파를 겁내는 졸장부인 줄 몰랐습니다. 창피해서 떠나야겠습니다.”

 

  인상여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강한 진나라 왕도 전혀 겁을 내지 않고 꾸짖어 구슬을 지켜 왔는데 염파 정도를 겁내겠느냐? 지금 강한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것은 염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야. 우리 둘이 서로 싸우면 한 사람은 죽어야 해. 그 틈에 진나라가 당장 쳐들어 올걸. 나라의 급한 일을 먼저 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뒤로 돌리려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가시나무로 매를 만들어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에 와서 사죄하였다. “비천한 제가 장군님의 관대함이 이 정도인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 이후 관계가 좋아져 생사를 같이할 정도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공정하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공정을 외치면서도, 실제 일에 부딪쳐서는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에는 공정하게 하다가도 결정적인 일에 이르러서는 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별 영향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좀 낫지만, 남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층 인사는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요즈음 정치인들에게 공정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물정 모르는 생각 같다. 최근 대통령 측근이고, 당선이 확실한 장제원 의원이 제일 먼저 불출마 선언을 했다. 뒤이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물러났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시각에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당을 살리려는 공적인 일을 먼저 생각하여 자기 개인의 욕심을 버리는 그 정신을 높이 쳐 주어야 하겠다.

 

* 先 : 먼저 선. * 公 : 공정할 공.

* 後 : 뒤 후. * 私 : 사사로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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