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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불식지무(不識之無) - 쉬운 ‘지(之)’자나 ‘무(無)’자도 알지 못 한다

 

  지난 8월 20일 서울의 한 카페의 웹툰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여, 사과하면서 “불편을 드려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 사과문을 본 누리꾼들이 다투어 분개하여 항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심심한 사과? 나는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또 다른 댓글은,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나?” 등이었다.

  댓글을 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심’한 사과의 ‘심심’이, ‘할 일이 없어 지루하다’의 뜻으로 잘못 이해할 뿐, 원래 ‘매우 깊다’ 의 뜻인, ‘심심(甚深)’인 줄은 거의 대부분이 몰랐고, 심지어 ‘사과 (謝過)’를 먹는 사과로 착각할 정도로 우리말 독해가 안되었다.

  ‘심심(甚深)은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고, 상당히 자주 쓰이던 말 이었다.

  이런 데서 젊은 세대들의 우리말 독해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웃을 일이 아니고, 정말 통탄을 금치못 하는 사건이다. 세계에서 대학 졸업자 비율이 1등인 대한민국에 사는 젊은이들의 자기 나라 말에 대한 이해 정도가 이렇다.

  우리나라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뜻을 모르면서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한글을 못 읽는 문맹률은 1%이지만, 실질적으로 문장 이해가 안 되는 문맹률은 75%에까지 이른다.


  한자는 자기가 모르면 절대 읽을 수 없다. 영어도 모르는 단어는 거의 읽을 수 없지만, 우리 글은 전혀 뜻을 몰라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모르는 단어이면서도 읽고 아는 채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단어 뜻 찾아가며 철저하게 공부하지 않은 채로 성인이 되어 그럭저럭 언어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최근 우리말 속의 많은 단어들이 급격히 사어(死語)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 사회인들이 일상 생활하는 데 필요한 단어가 약 4500개였는데, 20년 만에 약 1700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가 모르는 단어를 들으면, “왜 쉬운 우리말로 하지 어려운 한자 말을 씁니까?”라고 항의를 하며 자신의 무지를 도리어 변호하려고 한다.

  서울의 어떤 식품회사에서 사원을 뽑으면서 괄호 속에 ‘중국어 가능자 우대’라는 조건을 걸었다. 합격한 두 사람은, 한국 젊은이가 아니고, 모두 중국 유학생이었다. 한국 청년들의 우리말 수준이 중국어 학생에게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어 배우면서 처음에는 어려워하다가 얼마 지나면 원리를 깨닫는다.

  한국어란 것은, 한자를 알면 단어를 거저 알겠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는데, 그 때부터는, 꼭 한자로 표기 안 하고 한글로 표기해도 다 안다.

  예를 들면, ‘온대’, ‘온기’, ‘온화’, ‘온실’, ‘보온’이라는 단어를 보면, 한문을 잘 아는 중국 학생은, 금방 “아! 이 때 ‘온’자는, 따뜻할 ‘온(溫)’자구나.” 하면서, 배운 적이 없는 한국어 단어를 다 알아 버린다. 그리고는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한자 한문이 어렵다’라는 핑계로 국가에서부터 계속 학생들에게 한자 한문 교육을 안 한다. 우리 말은 75% 이상이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다. 학술용어 등 전문용어는 거의 99% 한자로 된 단어다. 한자 한문을 안 배우면 안되는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인데, 학생들의 부담을 들어주기 위해서, 우리 글자가 아니라고 해서, 한자 한문을 교육 하지 않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학생들이 한자 한문을 몰라, 평생을 고생하고 불편하게 사는데, 누가 보상하는가?

  한자에서 유래된 용어로 가득 찬 철학, 역사, 의학, 법률 관계 서적이 요즈음 완전히 한글로만 되어 있다. 아무런 체계나 질서도 없는 완전한 암호다. 학생들은 그런 것을 하나하나 다 외워야 하니, 그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자 용어를 한글로만 쓰다 보니, 뜻이 모호해진다. 그러자 괄호 속에 전부 영어를 집어넣어 놓았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몇 배로 가중시키는 것이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이 “디지털 문해(文解) 교육을 강화하라.”고 관심을 가지고, 개선방안을 지시했다.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갈 ‘지(之)’자와 없을 ‘무(無)’자를 알았다. 전설이 아니고, 본인이 절친 원진(元禾+眞)에게 준 편지에서 직접 한 말이다.

  백거이가 7개월 때 알았던 쉬운 두 글자도 모른다는 뜻에서 ‘글자를 모른다’, ‘무식하다’등의 뜻으로 이 단어가 쓰인다.


[*. 不 : 아니, 불. *. 識 : 알,식. *. 之 : 갈, 지. *. 無 : 없을, 무.]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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