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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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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지둔지공(至鈍之功) - 지극히 노둔한 공부

 

  한문에 관심이 많은 분이 “한문(漢文) 몰라도 한문학과 교수를 할 수 있다면서요?”라고 필자에게 약간 조소 섞인 질문을 했다. “한문학과 대학원생들이 석사, 박사 논문을 쓰면서 한문 번역본 보고 쓴다면서요?”라는 질문도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의 다 사실이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중요한 한문 고전을 거의 다 번역을 해 두었기 때문에, 한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번역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전의 내용을 알게 하는 큰 혜택을 준다. 오늘날 전공자 아닌 신문 기자들이나 소설가, 극작가, 무슨 주제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번역본은 한문학 전공자들에게는 한문을 공부하지 않게 하는 반작용도 한다. 한문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문 원전을 분석하지 않고, 번역본을 보는 순간 분석력이 말살되어 버린다.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원전을 읽고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이미 번역되어 있는 것을 활용하여 논문을 쓰면 한문 실력은 자기도 모르게 줄어든다.

 

  한문학과 교수 가운데 옛날처럼 애써 한문 원전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다. 논문 자료도 원전을 읽지 않고, 컴퓨터로 검색해서 적당하게 안배하면 된다. 현대문학을 전공했으면서 한문학과 교수로 있는 사람이 실제로 모 대학에 몇 명 있다.

 

‘춘추(春秋)’나 ‘예기(禮記)’를 읽어 보고 ‘논어(論語)’를 읽는 사람과 그냥 ‘논어’만 읽는 사람이 이해하는 정도가 같겠는가?

학부 학생들도 원전 강독 강의를 듣고 나서 그 시문을 분석하여 반복해서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고, 강의 끝나면 바로 컴퓨터를 검색해서 그 시문의 번역본을 찾아두었다가 시험 때가 되면 그 번역문을 외워 시험 답안지를 쓴다. 그러니 한문학과를 졸업했다 해도 한문 문리(文理)가 날 턱이 없다. 또 학칙상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140학점인데 전공은 40학점 정도만 따면 졸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니 한문학과 과목 가운데서 점수 따기 쉬운 것만 골라 듣고, 꼭 들어야 할 과목은 듣지 않고 졸업한다.

 

  한문 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몇 군데 있다. 그러나 번역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지, 배우는 사람들도 대학자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평균적으로 한문학 전공자들의 한문 실력이 날로 저하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지난 6월 1일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으로 취임한 김언종(金彦鍾) 교수가 한문원문 교육의 맥을 이어가겠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주자(朱子)의 말씀에 “비록 천하의 지극히 민첩한 재주를 가졌더라도 마땅히 지극히 노둔한 공부를 해야 한다(雖有天下至敏至才, 當用至鈍之功)”라는 구절이 있다. 어떤 학문이든지 대성(大成)하려면 계산대지 말고, 아주 노둔한 방법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 至 : 지극할 지. * 鈍 : 둔할 둔.

* 之 : 갈 지. …의 지. * 功 : 공력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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