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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소중망모(巢中望母) - 새 새끼가 둥지에서 어미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필자의 종조모 한 분은 팔자가 너무나 기구(崎嶇)하였다. 남편은 아들 둘을 남겨 놓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큰아들은 일본 해군에 징집되어갔다가 2차대전 때 전사했다. 둘째 아들은 정신이 이상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못 했다.

그래서 늘 우리 집에 와서 일을 거들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고분고분하였다. 맏동서인 우리 조모님은 종조모를 함부로 대하고 야단치고 일도 마구 시켰다. 그러니 우리 부친 형제들도 자연히 함부로 대하게 되었다. 그 종조모는 화를 내거나 반감을 갖는 일이 전혀 없었다. 필자는 어릴 때 “저 할머니는 속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단단히 믿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그 종조모와 집에 단둘이만 있게 되었는데, “신촌 할매!”라고 불렀더니,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욕을 마구 퍼부었다. “이 놈의 자식! 내가 남이가? ‘신촌 할매’가 뭣고? 니 할매가 나를 종처럼 대하니까 네 놈의 손까지 그렇게 해?”하며 욕을 한참 하셨다. 가까운 친척에게 택호(宅號)를 붙여 부르는 것이 법도가 아닌 것이었다.

 

  나는 그때 깊이 느꼈다. “세상에 속이 없는 사람은 없구나! 남에게 무시당하면서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그리고 단단히 다짐했다. “지금부터 남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칠십 살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남을 무시하거나 모욕한 일이 없으려고 노력은 했다.

 

  각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독재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만이 권력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조그마한 권력만 가져도 최대한 부리면서 갑질을 하는 사람이 많다. 남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이 많다. 옛날 군대에서 사병들끼리 고참이라 해서 후배들을 많이 괴롭혔고 부당한 일을 많이 시켰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약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여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꼭 돈이나 재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말씨와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다.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새[鳥]’라는 시는 이러하다.

 

  누가 여러 생물들 생명이 미미하다 말하는가?[誰道群生性命微,]

  다 같이 뼈 있고 살도 있고 가죽도 있다네.[一般骨肉一般皮.]

  너희들 가지 끝의 새 때리지 말게나![勸君莫打枝頭鳥,]

  새끼가 둥지에서 어미 오기 기다리고 있네.[子在巢中望母歸.]

 

  어미 새를 한 마리 잡았거나 다치게 했을 때, 새 새끼들이 둥지에서 먹이를 물어다 줄 그 어미 새를 기다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새 한 마린들 잡거나 다치게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측은한 광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꼭 사람만 귀한 것이 아니다. 동물도 귀하고 식물도 귀하고, 우주 안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귀하다. 나를 포함해서 다른 모든 것이 다 귀중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 巢 : 둥지 소. * 中 : 가운데 중.

* 望 : 바랄 망. * 母 : 어미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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