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메뉴 건너뛰기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절식순국(絶食殉國) - 먹을 것을 끊어서 나라를 위해서 죽다

 

  옛날부터 각종 이유로 먹는 것을 중단하고 자신의 뜻을 밝히거나 주장을 관철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요즈음에는 주로 단식(斷食)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중국에서는 아예 단식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주로 절식(絶食)이 쓰이고, 절곡(絶穀), 절립(絶粒)이라는 말도 썼다. 도교(道敎)에서는 수련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안 먹는데, 그 것은 주로 벽곡(穀)이라고 했다. 곡식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그 밖에 병곡(屛穀)이라는 말도 썼는데, 역시 곡식을 물리친다는 말이다.

 

  요즈음은 주로 정치가들이 자기의 주장을 내걸고 항의의 표시로 하는 단식이 대부분이다. 별로 절실하지 않을 때 단식을 한다면 도리어 단식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역사상 가장 거룩한 단식은, 조선 말기 학자이자 문신인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 1842~1910) 선생이 24일 동안 단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11세손으로 경북 예안현(禮安縣 : 지금의 안동군 도산면) 하계(下溪) 마을에서 태어났다. 24세 되던 186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여러 벼슬을 거쳐 승지(承旨)에까지 이르렀다.

1882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895년 왜놈들이 왕비를 살해하자, 의병장이 되어 왜적 토벌에 나섰다.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을사오적(乙巳五賊)의 매국적 행위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 결국 대한제국이 망하자, 나라의 은혜를 입었다는 이유로 음식을 끊고 나라의 운명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향산의 아들 기암(起巖) 이중업(李中業)이 향산의 묘갈명(墓碣銘)을 전라도 장성(長城)에 사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찾아가 받았다. 송사는 퇴계 선생의 학문과 후손 향산의 절의는 한 가지 뿌리라는 것을 부각하여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가 융성하였을 때는 퇴도(退陶 : 퇴계) 선생이 도학(道學)으로써 잘 다스려지는 시대의 문명(文明)의 운세를 열었고, 나라가 망하려 할 때는 향산 선생이 절의(節義)로써 만대에 전해질 윤리의 소중함을 붙들었다. 무릇 도학과 절의는 길은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하나며, 일은 달라도 효과는 같다. 그러니 두 가지 모두 천지 사이에서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 두 어른께서 우리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내려 준 은덕을 받게 해 주셨다.’

 

  진정한 학문을 하면 절의가 생기고, 진정하게 절의를 지키는 사람은 학문에 바탕을 두어야 가능하다. 나라가 망했을 때, 서울의 고관대작들 가운데는, 나라는 생각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일본이 주는 관작을 받고, 일본 천황이 주는 은사금(恩賜金)이라는 거금을 받고 기뻐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데 향산 선생은 조선왕조가 힘을 기울여 배양한 선비답게 스스로 절의를 지켜 국가와 운명을 같이했다.

 

* 絶 : 끊을 절. * 食 : 먹을 식.

* 殉 : 위해서 죽을 순. * 國 : 나라 국.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9 (1007) 광개언로(廣開言路) - 말이 통하는 길을 널리 열다 file 아우라 2023.12.12 21
148 (1006) 대덕필수(大德必壽) - 크게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오래 산다 아우라 2023.12.05 35
147 (1005) 무용부유(無用腐儒) - 쓸모없는 썩은 선비 file 아우라 2023.11.28 27
146 (1004) 수제자론(首弟子論) - 수제자에 대해서 논한다 아우라 2023.11.21 21
145 (1003) 학혐도박(學嫌徒博) - 학문이 한갓 넓기만 한 것은 싫어한다 아우라 2023.11.14 22
144 (1002) 소중망모(巢中望母) - 새 새끼가 둥지에서 어미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아우라 2023.11.07 18
143 (1001) 칠실우국(漆室憂國) - 칠실 고을에서 나라 걱정하다 file 아우라 2023.10.31 21
142 (1000) 부절여루(不絶如縷) - 실처럼 가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 나간다. file 아우라 2023.10.24 25
141 (999) 가야고분(伽倻古墳) - 가야시대의 옛 무덤 아우라 2023.10.17 17
140 (998) 식불종미(食不終味) -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끝까지 보지 않는다. 바삐 먹는다 file 아우라 2023.10.11 16
» (997) 절식순국(絶食殉國) - 먹을 것을 끊어서 나라를 위해서 죽다 file 아우라 2023.09.26 28
138 (996) 유가자제(儒家子弟) - 선비 집안의 자제들, 유학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아우라 2023.09.19 22
137 (995) 견리사의(見利思義) -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file 아우라 2023.09.12 30
136 (994) 숙독완미(熟讀玩味) - 자세히 읽고 그 뜻을 맛본다 file 아우라 2023.09.05 28
135 (993) 선생천해(先生天海) - 선생은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file 아우라 2023.08.29 19
134 (992) 음청풍우(陰晴風雨) - 흐리고 개고 바람 불고 비 오고 file 아우라 2023.08.23 16
133 (991) 심명안량(心明眼亮) - 마음이 밝으면 눈도 환하다 file 아우라 2023.08.08 16
132 (990) 사엄도존(師嚴道尊) - 스승이 엄해야 도리가 존중된다 file 아우라 2023.08.01 23
131 (989) 치수방재(治水防災) - 물을 다스려서 재난을 예방하다 file 아우라 2023.07.26 14
130 (988) 지둔지공(至鈍之功) - 지극히 노둔한 공부 file 아우라 2023.07.18 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 9 Next
/ 9
후원참여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후원참여
연학
후원회
자원봉사참여
회원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