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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실재서당

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식불종미(食不終味) -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끝까지 보지 않는다. 바삐 먹는다

 

  1994년 필자가 중국 북경(北京)에 살 때 중국 교수 댁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들고 갈 선물을 두고 먼저 유학 와 있던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이구동성으로 “중국 교수들의 자녀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한국의 신라면과 콜라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중국에서 한국 라면이 너무나 인기가 좋아 중국 교수들의 자녀가 한국 손님이 자기 집에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 손에 라면이 들려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이 초미(焦眉)의 관심일 정도였다.

 

  그때 중국에서도 한국의 기술제휴를 받아 생산하는 라면이 있었지만, 한국 라면과는 맛이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었으므로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 라면에 목을 매었다. 그때 한국 라면은 한국에서보다 5배 정도 비쌌으므로 중국 교수 월급으로 사 먹을 수 없는 고가식품이었다. 필자가 라면을 처음 접한 것은 1968년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고향 친구들이 모여 노는 곳에 갔더니 국수 비슷한 것을 끓이는데 먹어 보니 “천하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래 음미하는 음식은 아니고 순간적으로 입에 닿을 때의 맛이 사람을 사로잡았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와 보니 학교 식당에서도 이미 라면을 팔고 있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비싸서 그냥 부유한 집안 학생들이 먹는 것 냄새만 맡으면서 “저 맛있는 것을 언제 마음껏 먹어 보나?”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1973년 군대 가니 매주 일요일 점심으로 라면을 공급하여 간혹 맛볼 수 있었다. 그 뒤 군대에서 마침 양식창고 관리, 취사반장 등을 맡게 되어 라면을 마음껏 먹는 소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상한 현상은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니 그만 라면이 맛이 싹 없어져 버렸다. 아쉬울 때 귀할 때 구하려고 하는 심리상태와 언제든지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심리상태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물질이 풍요하다고 행복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만족만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라면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막대한 도움을 주었다. 고향 떠나 도시 공장 등에 다니는 남녀 청소년 근로자들은 대부분 자취를 했다. 한식을 갖추어 먹으려면 한 끼에 1시간 이상 걸리는데 라면은 15분만 하면 먹고 그릇까지 씻어 치울 수 있었다. 그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었고 그 시간에 국가 생산을 늘리고 개인적으로는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올해 9월 15일이 한국에서 라면이 탄생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은 한국 라면이 맛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전 세계에 수출되는데 1년 수출량이 7억 6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라면 사업은 전중윤(全仲胤)이라는 분의 집념으로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형 라면으로 개발하여 성공하게 되었다. 필자는 라면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마침 전중윤 회장의 비문을 짓게 되었다.

 

*食 : 먹을 식. *不 : 아니 불.

*終 : 마칠 종. * 味 : 맛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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