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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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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한학연구원장

 

수제자론(首弟子論)- 수제자에 대해서 논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집인 신라(新羅) 최치원(崔致遠)의 ‘계원필경(桂苑筆耕)’에서부터 조선말기 학자들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다 살펴봐도 ‘수제자(首弟子)’라는 단어는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수제자라는 말은 옛날에 아예 쓰인 적이 없는 말이다. 중국에서도 쓰인 적이 없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쓴 ‘퇴계선생사전(退溪先生史傳)’에 “선생은 끝내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으셨다.[不以師道自處.]”라고 했다. 선조(宣祖) 임금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에 대해서 물었을 때,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옹) 선생은 “조식은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도 제자 송규렴(宋奎濂)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스승의 도리로서 자처하지 않는다네”라고 했다.

 

  옛날의 큰 선생들은 모두가 스스로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같이 공부하는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스승 된 사람이 자기에게 배우는 사람보고 제자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더구나 어떤 제자를 두고 ‘수제자’라고 일컫거나 지정한 적은 아예 없었다. 제자 가운데서도 설령 누가 좀 뛰어나고 오래 배웠다 할지라도 스스로 수제자라고 생각하거나 일컬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남명선생의 수제자’, ‘퇴계선생의 수제자’는 애초에 존재하지를 않았다. 후세에 와서 그 후손들끼리 수제자 다툼을 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는데, 우스운 일이다.

 

  유가(儒家)의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선조가 어느 선생의 수제자인데…”라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이는 그 후손의 생각이지, 그분의 선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선조의 스승도 그렇게 인정해 준 적이 없었다.

 

  필자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덕천서원(德川書院)의 일을 9년 동안 맡아보다가 금년 봄에 그만두었다. 어떤 사람이 “덕천서원에 왜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을 배향(配享)하지 않느냐?”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왔다. “정인홍은 남명선생의 수제자이고, 더구나 벼슬이 정1품 영의정(領議政)에까지 이르렀는데, 안 모신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배향해야 될 이유를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몇 가지를 크게 잘못 알고 있다. 남명 선생의 수제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명 선생이 “아무개가 내 수제자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또 서원에 향사되거나 배향되는 인물은 학덕(學德)으로 정하는 것이지, 벼슬로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선생(大先生)을 모신 서원의 위패(位牌)에는 벼슬을 쓰지 않는다. 벼슬 가지고서 그 인물의 학덕을 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서원에 어떤 인물을 배향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일 맡은 몇 사람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림의 공론(公論)이 있어야 가능하다.

 

* 首 : 머리 수. * 弟 : 아우 제.

* 子 : 아들 자. * 論 : 논할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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